대치동 반장의 조건

초등학교에선 전교회장이던 아이가 대치동에서 반장이 되지 못한 이유

by Joy of Inquiry

반장의 조건

“반장은 누가 하면 좋을까?”


3월이면 전국의 초·중·고 교실에서 반복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재밌는 아이.
친구를 챙기는 아이.
싸움을 말릴 줄 아는 아이.
그리고 이상하게도, 작은 몸집인데도 무리를 이끄는 아이.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원어민 영어 수업이었는데,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단어를 보고 몸으로 표현하면 반 아이들이 맞히는 방식이었다.


우리 아이 차례가 되었다.
단어는 swim.


나는 속으로 ‘팔만 휘저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아이는 갑자기 교실 바닥에 냅다 누웠다.

그리고 파닥파닥.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듯 온몸으로 허우적거렸다.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웃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아, 우리 아이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


또 한 번은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5, 6교시가 끝난 뒤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m)는 쭈그려 앉아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덩치 큰 한 아이(k)가 눈치를 주고 있었다.

“너 들어올 생각 하지 마!”


그때 우리 아이(s)가 뒤늦게 운동장에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m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너도 하고 싶어?
들어와 들어와.”


그리고 운동장을 돌며
m1, m2, m3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너도 와.”


잠시 후 k가 뛰어왔다.
아까까지 위협적인 표정을 짓던 그 아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집이 더 작은 우리아이(s)가 아이들에게 외치는 말을 듣더니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그래서 우리 s가 반장이었구나.

리더십이란
앞에 서서 지시하는 능력이 아니라
뒤에 있는 아이들을 끌어오는 능력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때 우리 아이는

반장,
전교 부회장,
그리고 전교 회장을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보는 아이들,
새로운 분위기,


첫 선거에서는 근소한 표 차이로 떨어졌다.


아이를 많이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그 차이면 거의 된 거나 마찬가지야.”


1학년 2학기.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자신 있어.”


하지만 결과는 또 같았다.
이젼과 같은 구도, 같은 경쟁자.


그리고 또 낙선.

그때쯤 깨달았다.


여기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그리고 전혀 다른 반장의 기준.


대치동에서 반장은 대체로 이런 아이들이다.


수행평가 일정을 꼼꼼히 챙기는 아이

시험 관련 자료를 정리해 나눠주는 아이

공지사항을 빠뜨리지 않는 아이


즉,

모범생.

왜냐하면
여기서 반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얘들아, 수행평가 언제까지야.”
“이거 시험 범위래.”
“이거 프린트 나왔어.”

같은 학습 정보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대치동 아이들이 기대하는 리더는
친구를 끌어안는 리더라기보다
학습 시스템을 관리해 주는 리더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합리적인 기준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떤 반장이 더 좋은 반장일까?

수행평가 일정을 완벽하게 챙겨주는 아이일까?


아니면
운동장 구석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왜 여기 있어?
너도 들어와.”

라고 말하는 아이일까?


정답은 아마 없다.


각 지역의 아이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단지 내 아들이 반장이 되지 못해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 사회가 점점

“관리 능력”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람을 품는 능력”은 점점 보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아이를 리더로 뽑는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본다.


지금 우리의 교실은

사람을 잘 챙기는 리더보다
성적을 잘 챙기는 리더를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나는 안다.

반장이 되지 못했어도
운동장 한쪽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눈,


그리고

“너도 들어와.”

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언젠가
훨씬 더 큰 리더십이 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