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주가지수 5,000포인트 시대

by 최성환

“우리는 주가지수 5,000포인트 시대를 열겠습니다!”

앰프를 울리는 그 외침에 군중은 박수를 쳤고,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마치 진짜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마치 그 숫자가 삶의 수준을 바꿔줄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후보는 ‘주가지수’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2025년 4월 21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이창명 후보가 주최한 자본시장 활성화 간담회가 열렸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초청된 자리였지만, 나는 독립리서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 초청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이창명 후보의 정책보좌관, 유정민의 제안으로 자리를 얻었다. 정민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81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우린 둘 다 SKY 출신이 아니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흘린 땀의 무게를 잘 알기에, 동질감을 느끼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도진아 아까 회의에서 한마디 하지 그랬어?”

정민이는 내게 핀잔을 줬다. 내가 몇 년째 주장하고 있는 한국 주가지수의 왜곡 문제를 왜 오늘 같은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장소에서 해당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싸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정민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머릿속엔 몇 해 전, 뉴욕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쳐 갔다. 그때 나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벗어나고 싶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한국 시장에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광기에 가까운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다. 실적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거래대금이 몰리는 종목들이 그저 올라가는 전형적인 거품 장세였다.

나는 코로나 기간 중에 틈틈이 MBA를 가기 위해 준비했다. 학벌에 대한 갈증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선진 금융을 배우고 돌아와야 한다는 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다행히 뉴욕대학교 NYU에 합격했고, 결단을 내렸다. 독립리서치 법인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할 일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NYU STERN MBA, 그곳에서 나는 나보다 유능하고, 훨씬 앞서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월가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동기들, 퀀트 기반의 자동매매 시스템을 개발하는 친구들, 그리고 기업가치보다는 주가지수의 구조를 해석하던 전문가들. 다행히 50명 남짓한 동기들 가운데 애널리스트는 나 혼자였다. 월가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한국 시장에도 관심이 있었고, 가끔씩 그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시가총액은 계속 커지는데, 왜 주가지수는 그대로야?”

“KOSDAQ은 PER이 왜 이렇게 높아? KOSDAQ 150 지수는 PER이 200배가 넘던데 어떻게 해석해야 돼?”

“미국 바이오 기업이 한국에 상장한다던데, 상장 요건이 어떻게 다르지?”

처음엔 나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갈수록, 내 대답은 점점 모호해졌고, 질문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분석하고 있었던 것은 아시아 작은 국가에 상장된 개별 종목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한국 시장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종목이 아닌 시장 자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나스닥은 시가총액이 증가한 만큼 지수가 상승하는데, 코스피, 코스닥은 왜 시가총액이 늘어나도 지수는 제자리일까? 코스닥 시장의 PER 수준이 100배가 넘는데 왜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을까? 외국인 투자자들은 왜 9개월 연속 한국 시장에서 매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데이터를 모았다. 상장사 수의 변화, 신규 IPO가 지수에 미치는 영향, 지수와 시가총액 간의 괴리율, 기술특례 상장 기업들의 주가와 실적까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됐다.

“우리나라 주가지수는 더 이상 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

나는 한국 주가지수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까지 제시해가며 한국거래소에 공식 질의를 넣었다. 또한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에도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한국거래소의 황당한 답변뿐이었다. 한국거래소의 주가지수 산정 방법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으며, 지수 심의회의 정기 감사를 받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정민이의 목소리가 다시 현실을 끌어당겼다.

“도진아, 다음 주에 한국은행 기획협력국장 만나는 자리가 있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기획협력국?”

“그래. 지수 산정 체계랑도 연결될 수 있는 부서지. 너 예전 그 자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후보님도 주식시장에 관심 가지고 계시니까, 권력의 힘으로 다시 부딪쳐 보자고.”

그는 진심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간담회에서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이건 마이크 앞에서 던질 ‘문제 제기’가 아니라, 책임을 걸고 파고들어야 할 ‘운명’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