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키리>, 고바야시 마사키
전국시대 이상없다: 부당하게 가족을 잃은 남자가 한 가문에게 복수한다. 가문은 부시도를 상징하는 선조의 붉은 갑옷을 고이 모셔놓고 받든다. 하얀 수염과 음산한 연기, 이것은 망령이다. 일견 잃을 게 없는 남자가 위선적인 사회 규범을 뒤엎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도 같은 시대의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그 역시 평화시대에 사무라이가 겪는 실업난을 똑같이 통과했으며, 사위가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검을 팔아치울 때 그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명 한 명 가문의 집행자들을 처리할 때에도 절대 기습하거나 간계를 쓰는 법이 없다. 가문 최고 검사와의 결투 역시 일대일로 정정당당히 이뤄지며, 그가 승리를 거둔 것은 십이년전 전장에서 닦은 실전 경험 덕분이다. 최후의 발악 끝에 그는 몸에 착 달라붙은 예의 그 갑옷을 내던지고, 새 시대의 무기인 조총이 닿기 전에 할복한다. 이것은 긍지높은 사무라이의 살풀이다.
<센소>, 루키노 비스콘티
거울, 오페라, 현실의 불완전한 반영 속에서 막을 올린 치정극은 두 남녀의 욕망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린다. 반만 걷어올린 베일, 거울에 비치는 연인, 리비아의 말을 제멋대로 왜곡하는 프란츠와 퇴각 명령도 무시한 채 전쟁을 지속하는 포병대. 전쟁의 파편화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제각각의 드라마를 연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리비아가 독립운동가 사촌과 애인을 계속해서 혼동하는 까닭은 구국의 위기조차 욕망의 문제로 떨어졌음이다.
끝내 선을 지키지 못하고 무대를 탈출한 리비아는 편지를 보고 찾아간 프란츠의 집에서, 이제 막 침실 밖으로 빠져나오는 그를 본다. 침실, 밀회의 장소이자 앵글의 병치를 통해 오페라와 연결된 적 있는 그들의 무대 밖에서 리비아는 마침내 한껏 승화된 진정한 사랑 프란츠가 아니라, 도박꾼에 바람둥이인 탈영병 프란츠를 마주한다. 본의 아니게 극 밖으로 튕겨져나온 그는 돌연 내면의 자기혐오를 드러내고는 미친듯이 웃는다. 프란츠가 지금까지의 로맨스 연기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은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 뒤에서 붙잡힌 배우다.
황망히 집을 나선 리비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승전의 기쁨에 얼싸안은 병사와 아낙들, 그리고 또 다시 연극 씬과 똑같은 앵글로 붙잡힌 도시 풍경이다. 극은 끝나지 않았다. 리비아가 끝났을 뿐이다. 어긋난 평행을 고치기 위해 리비아는 헌병대로 향해 프란츠의 병역기피를 고발한다. 애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위에 호소하는 그녀 모습은 아마 파편화의 절정인 동시에 차가운 현실로의 복귀일 것이다. 일사천리로 처리된 행정은 고주망태인 탈영병을 뒷골목으로 끌어내 처형시키고, 제 때 끝나지 못한 연극의 막을 내린다. 프레임에는 실패한 예술의 허무한 적막만이 남는다.
<콜 걸>, 알란 J. 파큘라
사창가의 신데렐라, 기만과 조작의 껍데기를 허물고 살갗을 부비는 자가 승리한다: 한국 개봉명은 <콜 걸>, 원제는 <클루트>인데 어떻게 사설탐정 클루트와 ‘콜 걸’ 브리가 두 개의 층위로 이야기를 얽어나가는지를 생각하면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다. 서사의 표면에 드러나는 싸움은 하나이지만, 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사실 두 개이다. 클루트가 피터 케이블의 조작적 음모와 싸울 때, 브리는 내면의 자기 파괴 욕구와 싸운다. 클루트와 사실상 연인 관계가 된 후에도 브리는 그 관계를 깨뜨리고자 하는 욕구를 상담사에게 고백하고, 잊을만하면 그녀의 전 애인이자 포주인 프랭크가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드넓은 품으로 돌아올 것을 암시한다. 매춘부를 향한 사회적 압박과 편견은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그녀 내면에서도 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편견없이 사랑해줄 사람은 준비되어있으니, 정말로 깨뜨려야 할 것은 후자 뿐이다.
빌딩 최고층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막스의 삼자대면 씬은 영화가 꾸준히 쌓아올린 복층 구조의 종합이다. 1층의 클루트, 2층의 브리, 옥상의 침입자- 위로 올라갈수록 기만은 강화되고 의도는 불투명해진다. 예의 그 배우기질을 발휘하여 상황을 모면하려는 브리의 임기응변도 꼭대기의 조종자가 보기엔 한낱 재주에 불과하다. 끝내 진심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이던 브리를 무장해제시키는 것도 클루트의 무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피터의 녹음 테이프가 내뱉는 압도적 공포다. 자신의 음욕이 탄로날까 두려워 창밖으로 투신하는 피터의 최후는 브리에게 있어 하나의 교훈이었을 것이다. 정작 피터가 사무실에서 거듭 반복해 듣던 테이프에서 알 수 있듯 브리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ㅡ 그게 다름아닌 연기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