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무언가

by 김승요

단식이라는 행위는 단어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단식이나 금식은 건강 관리나 체중 감량을 위한 ‘자발적 선택’으로 통용된다. 또한 ‘간헐적 단식’이나 바디 프로필을 위한 절제가 일상이 된 요즘 사람들에게 ‘굶음’은 더 나은 외형적 모습과 건강을 위한 적극적인 자기관리의 한 영역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우리보다 앞선 세대들이 체감했던 단식의 의미는 지금과는 분명 사뭇 달랐을 것이다.


과거 집안의 어른들에게 ‘곡기를 끊는다’는 말은 곧 삶의 의지를 거두겠다는 결연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생사의 문제였다. 먹을 것이 귀하고 하루의 생존 자체가 투쟁이었던 시절에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는 행위는 단순히 한 끼를 거르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을 하지 않겠다는 ‘죽음’을 각오한 처절한 항거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시 누군가 금식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집안과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었을 터.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단식이 ‘비움의 미학’정도로 여겨진다면 생존이 지상 최대 과제였던 그들에게 단식은 ‘존엄’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셈.


시대에 따라 행위의 목적과 명분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생명의 근원인 음식을 멀리한다는 본질적인 서늘함은 여전하다. 예전 어른들이 단식이라는 단어 앞에서 느꼈을 그 절박한 심경을 반추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굶겠다’는 말 뒤에는 한 시대가 감내해야 했던 생존의 역사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행위의 형태는 같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생명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단식은 그런 거다. 죽음을 각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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