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며 굴곡 있는 인생이 무조건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운다.
바다는 아름답다.
순수하다.
감미롭다.
광활하다.
강인하다.
신비롭다.
모든 것을 품는다.
알 수 없는 존재다.
두렵다.
변화무쌍하다.
야생 지대다.
인간의 삶 속에도 이런 모든 변화가 들고난다.
그래서였을까?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삶을 '바다 여행'에 비유했다.
'데카르트'는 합리적으로 수영하는 사람처럼 호흡을 되찾고 바닥에 발을 단단하게 디뎠다.
'파스칼'은 인간의 상태를 끝과 구원이 없는 끔찍한 무인도에 난파된 상태, 의미와 기준이 상실된 상태로 묘사했다.
『모든 삶은 흐른다』의 저자인 '로랑스 드빌레르'는 우리라는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면, 바다 앞에 서라고 한다.
파도의 리듬에 맞출 때, 파도의 움직임과 빛이 보여주는 놀라운 아름다움 속에 있을 때, 산다는 것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대략 보일 것이고 이렇게 '보이는 것'들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 어떤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
바다는 인생이다.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소용돌이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곧 잔잔하게 빛을 담아 환하게 빛나는 것.
우리의 삶도 그렇게 소란하게 흐른다.
바다 _ 무한으로 이어지는 인생
: 바다는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고 포용할 것처럼 보이지만 비밀이 가득하다. 그래서 바다는 언제나 탐구 대상이다. 바다는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다. 늘 움직이고 항상 변하고 쉴 새 없이 일렁이는 파도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인생은 멀리 떠나는 항해와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바다와 대양 _ 인위적인 라벨 거부하기
:대양과 바다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바다는 대양처럼 무한하게 펼쳐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큰 바다라고 알려진 아라비아해 혹은 오만 해는 면적이 약 400만 제곱킬로미터인 반면, 가장 작은 대양이라고 알려진 북극해는 면적이 1,400만 제곱킬로미터나 된다.
또 바다는 끝이 있지만 대양은 끝이 없다. 바다는 나름의 모양과 범위가 있지만, 솟아오른 땅을 전부 끌어안은 듯 보이는 대양은 정해진 모양과 범위가 없다.
인간에게 라벨을 붙여 카테고리별로 분류를 한다면, 선택을 강요하는 레벨, 조바심, 침묵, 집착 혹은 충동을 부추기는 라벨도 있겠지만, 우리는 라벨과 분류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고정 이미지를 벗어나 상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밀물과 썰물 _ 올라가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
: 밀물과 썰물은 해양학과 천문학이 뒤섞인 복잡한 현상이다. 땅과 하늘, 천체와 조수(潮水)가 서로 끌어당기는 놀이를 할 때 이 현상이 생긴다. 이런 현상도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야 일어난다. 달은 지구와 바다를 끌어당긴다. 중력과 천체의 힘이 작용해 생기는 현상이 밀물과 썰물이다. 물러날 때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밀물과 썰물이 계속해서 벌이는 놀이다.
우리 삶에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바다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지만 한 번 삐끗하면 쉽게 돌이킬 수 없는 리듬이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 인생에도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이 움직임을 거스르기보다는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다. 노련한 바닷사람처럼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바람을 역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인도 _ 진정한 고독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이 분주함으로 채우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비어 있는 것이 두려운가?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불안한가?
침묵의 위대함. 여유로움의 위엄을 실험해 보라. 진정한 자신과 함께 한다면 그곳은 진짜 무인도일지라도 무인도가 아닐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보자도르 곶 _ 상상력을 발휘하는 용기
: 보자도르 곶은 인도 가는 길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스쿠 다가마도 보자도르 곶을 지났다. 유일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험한다면 모두가 할 수 있다.
바다와 대양이 우리에게 끝없이 전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난파 _ 위험에 대비하는 자세
: 바다는 생이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며,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곳이다. 인생의 고난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때 나의 생을 살리는 건 신중함의 기술이다. 신중함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된다. 행동이란 앞을 잘 바라보는 항해와 같고, 신중함의 중요성은 말하고 또 말해도 아깝지 않다.
삶은 당신에게 이미 주고자 하는 걸 모두 주었다.
마치 바다처럼.
해적과 해적질 _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 바다 위 해적들은 무기, 강도질, 협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유죄다. 죄를 조사하는 인간 법에서도 악행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는 무법지대를 밝히는 일이다. 바다 위 해적뿐 아니라 일상 속 해적에게도.
상어 _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
: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건 상어가 아가미로 호흡을 하는 것과 같다. 상어는 같은 바다를 두 번 헤엄치지 않는데, 관성에 빠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습관적이고 폐쇄적인 행동들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살지 않아야 한다.
바다는 자신을 그대로 내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다.
필요 이상으로 숨길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이며 나아가면 된다.
섬 _ 나답게 살기
: 인간도 각자 하나의 섬이다. 획일적인 대중과 대항하는 섬, 오랫동안 다져진 화산섬, 투쟁하는 섬, 반대로 넓은 바다에 빠르게 생겨나는 섬이다. 지구상에 똑같이 생긴 섬은 없다. 사람처럼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특별하다. '나는 나일뿐이다.' 이것이 섬의 영혼이다. 섬은 땅에도 바다에도 속하지 않는 그냥 섬일 뿐이다. 섬은 땅과 바다를 어느 정도 같이 품고 있다.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온다.
항해 _ 멀리 떠날 수 있는 용기
: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남에게 끌려다니고,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인생을 막살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아껴야 한다.
지금까지 의미 없는 것들을 고민하느라 체력과 재능을 너무 낭비해 왔다.
바다는 계속해서
방문자를 기다리는 심연의 박물관이다. - 필립 돌
헤엄 _ 자아라는 부담과의 결별
: 견디기 힘든 가장 무거운 것은 자아다.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지금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만든 그것 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에 자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정작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자아의 여러 이미지와 함께 살고 있다.
거품이 빠진 자아는 고귀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우아한 자세인데, 우리의 자아에는 이러한 우아함이 없다.
바다 소금 _ 가진 것을 새롭게 음미하는 법
: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행복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과거에 맛본 만족감을 희미하게 만들고 감흥을 없앤다. 바닷물처럼 처음 짠맛을 그대로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걸까? 우리가 변해서? 우리의 취향은 변할 수밖에 없어서? 익숙함에 속아 짠맛에 무뎌진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익숙한 것은 더 이상 탐구하고 새롭게 감상할 수 없게 된다. 무뎌졌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 더 이상 흥분이 되지 않을 때를 권태기라고 한다.
이외에 이미 가진 것을 더 이상 원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안타까운 심리도 있다.
사물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이 사물에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뿐이다.
바다는 파도가 오지 않도록 막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건 바꾸려 하지 않고,
다가오는 건 그대로 받아들인다.
등대 _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표 만들기
: 등대는 돌과 불꽃으로 만들어진 구명 튜브 같은 존재이며, 든든한 안전망이다.
희망을 품으며 마음속의 등대를 계속 간직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마음의 등대가 되는 존재들을 진지하게 정리해 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을 내 사람, 즐거움 그 자체, 추억의 장소 등을 마음속에 세워본다. 그것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흔들림 없이 단단한 고정점이 되어 줄 것이다.
바닷가 _ 쉬어가기의 중요성
: 바닷가에서는 오직 바다만 경험해야 한다. 바다를 보고 바다의 향을 맡고 바닷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닷물을 만지면서 온몸으로 황홀감을 맛봐야 한다. 바다만큼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드물다. 이처럼 바다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려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야 한다. 빈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는 것으로 만족한다.
바다의 운명은 끝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바퀴와 같다.
운명의 바퀴는 우리의 삶에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한순간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크라켄 _ 새로운 지식으로 편견 부수기
: 크라켄이라 알려졌던 괴물은 아마도 대왕오징어로 추측되고, 바다 괴물과 용으로 알려졌던 동물들은 큰 고래, 바다코끼리, 긴 이빨 고래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심지어 최초로 지도에 평평한 지면 위 지구의 둥근 모양을 그려 넣은 '메르카토르'도 전설과 과학을 한데 뒤섞었다. 그 결과 11개가 넘는 괴물들이 그림으로 탄생했다.
자연이 비어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간은 모르는 곳에는 무섭고 위험한 괴물이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해를 할 때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영역까지 나아가야 한다. 엉뚱한 상상으로 괴물들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편견과 왜곡된 생각에 갇혀버리면 세계관이 좁아지고 단순해진다.
파도는 예상보다 더 깊게 파고들고, 더 멀리 밀려간다.
밀려갈 때는 영영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발밑에 와 있다.
우리 삶에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사르가소 _ 피해야 할 후회라는 덫
: 시르가소의 바다는 독특하고 묘하다. 해안도 바람도 파도도 없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사르가소의 바다는 움직임도, 밀려오는 파도도 전혀 없는 '해양 사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문어발처럼 보이는 커다란 해조류로 금세 뒤덮이고 또 뒤덮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사르가소의 바다를 최초로 탐험한 사람이다. 인간도 바람과 해안이 없는 시르가소의 바다처럼 에너지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앞으로 나아가니 못할 때가 있다. 마치 바람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배처럼.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후회만 하고 있으면 이미 지나간 행동과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미련만 느낄 뿐, 현실에서는 꼼짝도 못 한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항해를 한다는 것은 길을 정해 따라가는 것이니 확신이 들지 않아도 묵묵히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렇게 후회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자책을 확신으로 바꿔야 한다.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과거 후회가 되는 일도 내가 지나쳐온 여정이다.
인생의 여정은 후회의 총집합도, 죽을 정도로 무겁고 가벼운 것도 아니다. 내가 실제로 항해하는 수많은 길 중 하나이다.
바다는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오르고, 내일은 내린다.
바다를 보며 굴곡 있는 인생이
무조건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운다.
바다에게 거친 파도와 잔잔한 물결이 일상이고
필요한 것처럼 삶도 그러하다.
방파제 _ 슬픔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거센 파도는 열렬한 사랑처럼 모든 것을 휩쓸고 배를 난파시킨다. 사랑은 서정적이면서 격렬하다.
사랑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다뿐이다. 바다도 사랑처럼 위로가 되면서 절망이 된다.
사랑은 태어나 활짝 피었다가 퍼석하게 시들고 끝내 사라진다. 삶에서 실연의 상처만큼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없이 아무것도 아니다. 실연의 아픔이 참기 힘든 이유는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직 헤어진 연인만 생각난다. 비극 속 주인공처럼 내내 괴로워하다가 끝내 애착이 증오로 변한다.
이제 방파제의 기술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방파제가 맡은 일은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방파제는 이렇게 말한다. "소용없어. 난 안 쓰러져" 마음이 강하든 여리든 우리는 슬픔을 누를 수 있는 마음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어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이 나에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실연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느냐다. 상실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방파제다.
푸른색 _ 삶은 수많은 색채를 경험하는 것
: 삶을 다채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추한 것에 수동적으로 끌려가 일상을 망치지 말고 아름다움에 기회를 주며 우리의 삶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신이 얼마나 재능 있는지 잊게 될 때, 나는 바다를 본다. - 우피 골드버그
닻 _ 바람에 휘청이지 않도록
: 휘청이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건 커다란 닻뿐이다. 배에서 가장 무거운 것도 바로 닻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휩쓸려가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가기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커다란 닻이 있다. 마음속에 바람이 몰아칠 때 고통을 가라앉혀주고 쉴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닻이다.
닻은 힘을 불어넣어 준다. 닻은 희망을 상징한다. 실낱같은 믿음, 설령 그것이 헛된 믿음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믿음이다.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강한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최후의 수단이 커다란 닻이 필요하다. 나에게 꼭 붙어 있는 신성한 닻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자유를 안겨준다. 물결이 아무리 강해도 닻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다.
바다의 물결은 가슴을 채우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편안한 호흡과 같다.
선원 _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
: 바다에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건 위험과 마주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빠르게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애매한 결정은 안 된다. 그래서 선원들이 생각하는 '완전한 삶'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언제나 '올인'한다. 선원들의 삶을 향한 태도는 살면서 모든 걸 억지로 남에게 맞추지 않는 점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선원은 누가 부를 때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때로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인간이 바다와 맺고 싶은 관계는 '자유로움'이다. 선원은 이를 몸소 보여준다. 이들은 순응적이지 않기에 남과 억지로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바다는 지조가 있다. 바다는 자유의 의미를 보여주는 존재다. 바다가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늘 준비해서 대답할 필요가 없고, 아무 계산 없이 도와야 할 의무도 없고, 남의 말을 조용히 경청할 의무도 없다. 바다와 선원들은 따뜻하고 건강한 '이기주의'가 있어야 독립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선원은 신이나 규칙이 없어도 알아서 뱃머리를 돌리지 않는가. 선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는 자유의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다.
빙하 _ 모든 것은 그저 과정일 뿐
: 우리는 살면서 성공을 기뻐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간다.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역경이 닥쳐도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그 행동을 이해하기도 한다. 지금 당신의 삶을 커다란 빙하가 가로막고 있다면 당신은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마찬가지다.
인생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억울하거나 희망을 잃거나 수치심을 느낄 때다. 이럴 때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계속 나답게 사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을 잃거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어쩌면 이전만큼 진두지휘하던 위치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계속 쉽게 부서지지 않는 군함에 타고 있다. 역경을 견뎌내면 더 강해진다. 그저 역경을 헤쳐 나왔을 뿐이라도 그 자체로 이미 대단하다.
바다는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아 자유롭다.
깃발 _ 느낀 것을 당당히 말하기
: 해군의 암호와 신호가 적힌 것이 깃발이다.
깃발 A - 알파 Alpha는 "바다에 다이빙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를 두고 속도를 줄이기 바란다"라는 뜻이다. 브라보 Bravo, 찰리 Charlie,
깃발 D - Delta는 좀 더 직접적인 뜻으로 "방해하지 말기 바란다. 조종이 어려운 곳이다."
아빠 Papa, 탱고 Tango... 깃발 k - 깃발 Kilo는 다정한 의미로, "교신을 원한다." 혹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뜻이다.
깃발 V - 빅터 Victor는 승리를 나타내는 'V'와 전혀 상관없이 "지원을 요청한다"라는 긴급 메시지다.
살다 보면 깃발을 크게 펼치고 항복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패배했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로는 항복이 최선이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롭다. 메이데이 Mayday,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SOS 신호다.
바다에 있으면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핵심만 말하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분명히 말하지 않고 감정도 직접 전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빙빙 도려 이야기하는 데 쓴다.
여기서 바다가 주는 교훈이 있다. '아니요', '예'를 명확히 하고 형식이 서툴러도 요청 사항은 분명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다.
모비 딕 _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아는 일
: 모비 딕은 무시무시한 흰 고래다. 고래잡이배 피콰드 호의 에이해브 선장은 모비 딕에게 다리 한쪽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오직 복수만 꿈꾸면 50년 이상 바다를 누볐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 원래의 질서로 되돌려놓겠다는 마음에서 분노는 시작된다.
에이해브 선장은 이 같은 분노를 상징하고 모비딕은 그가 당한 피해와 잔인한 운명이다. 선장은 이 운명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한다. 가혹한 운명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부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러나 부당함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억만 선명하게 되살리 뿐이다. 이러한 무력감 때문에 복수하는 사람은 더 분노하며 피의 복수는 강도가 더욱 세진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욕망이 무엇이든, 우리의 원한이 무엇이든 현실은 귀를 닫고 듣지 않는다.
<<Moby-Dick; or, The Whale>>은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그리고 서구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고전 소설이다. 미국 문학의 대명사로 불리는 해양 소설로, 국내에는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모비 딕>>은 손에 넣기 힘든 무엇인가를 쫓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흰고래는 복수의 대상뿐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된 알 수 없는 오래된 욕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의미, 이유, 꿈을 찾아 삶이라는 바다에서 헤맨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수수께끼를 밝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어쩜 모비 딕은 어마어마하고 귀한 성배와 같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름은 붙이기 힘들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욕망하는 것이다.
삶이란 바다처럼 다양한 색을 띤다.
어느 날은 눈부신 푸른색이었다가
또 다른 날은 짙은 회색이다.
바다의 빛이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
세이렌 _ 조종하려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법
: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은 시칠리아 섬 부근에 살며 반은 여인이고 반은 새의 모습을 한 괴물로 알려져 있다. 반인반어인 인어공주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세이렌의 노래에 홀린 선원들의 배는 암초에 부딪혀 부서지고, 세이렌이 유유히 선원들을 먹어치운다는 끔찍한 내용의 신화다.
삶에서 유혹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고, 그 유혹에 넘어가 파멸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유혹을 당할 때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논리적이지 않은 말에 쉽게 넘어가곤 한다.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속이는 세이렌이 될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을 알아도 그대로 두고 진실보다 거짓을 선택하면 악순환만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어두워진다. 두려움, 대화 단절, 공격성, 원한이 자란다. 거짓은 전염성이 강하고, 정신과 의지는 오염되고 썩는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일수록 의심하지 않고 완고하며, 의문을 품지 않고 다 아는 체하고, 언제나 이해하는 척한다. 선동된 여론은 대체로 신중하지 않으나 문제는 대세인 의견일수록 우리의 마음에 쉽게 와닿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바람이고, 퍼뜨리는 것은 가십이다. 이렇게 아무 저항 없이 대세에 떠밀려간다. 이런 사람일수록 정보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용하는 팔로워 순응주의자일뿐이다. 이들의 정보와 지식의 대부분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SNS와 가짜 뉴스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세이렌과 꾸준하고도 강하게 맞서야 한다.
율리시스가 선원들에게 귀를 막고 갑판의 승강구를 닫으라고 제안한 방법이 치료 책이 될 수 있다. 선동하는 방식과 세뇌하는 의견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담담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이렌 마녀들과 한 패가 되어 유혹의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차갑더라도 진실을 중시하는 태도를 늘 지켜야 한다.
모든 삶은 흐른다.
바다처럼
변화무쌍한 거대한 바다와 변덕스럽고 자잘한 우리네 일상이 어찌나 이렇게 닮아있는지!
『모든 삶은 흐른다』 책은 모두에게 '삶의 지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 '로랑스 드빌레르'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다는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자연이다.'라는 메시지를 곱씹어 보게 된다. 책에서 바다와 연결된 삶의 표현은 다양하고 풍부했지만 그 주제는 일관된다.
파도와 때에 맞춰 밀려오고 물러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커다란 닻'이 있다.
마음속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괴로움과 아픔을 사그라들게 하는 닻이었다.
평온한 마음은 나약함이 아닌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저자의 말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어떤 것에 실패해도 우리의 존재가 실패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가치 있는 존재다.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삶은 흐른다』 책을 덮으면서, 실패해도 우리는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꾹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