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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방구석 판소리』조선의 오페라 소리여행 -이서희 저

국악에 빠져들게 하는 힐링 에세이 여행서

by Someday

책 『방구석 판소리』를 펼치면, 먼저 친절한 '판소리 용어해설'을 마주하게 된다. 평소 국악을 멀리했던 독자라도 '판소리의 정의'부터 '18세기 판소리 12마당'까지 풀어놓은 상세한 설명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각 파트의 단락마다 실려있는 'QR코드'에 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 국악의 생생한 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방구석 판소리』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 오페라인 판소리, 조선의 아리아인 타령 네 마당, 삼국시대 뮤지컬인 향가, 고전 발라드인 고전시가까지 원 없이 듣다 보면, 국악의 문외한도 자연스레 우리 음악과 문화에 빠져든다.





P A R T 1 조선의 오페라 _판소리 다섯 마당

1-1 심청의 바다: 헌신과 기적의 오페라 <심청가>

<심청가>는 조선 후기 배경의 작품으로 탄탄한 구성과 음악적 완벽성을 지녔으며, 환상과 낭만까지 어우러진 판소리이다. 심청이 봉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의 전개를 통해 당시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심청가>는 효의 미덕을 종교적 테마와 결합, 효의 실천인 도덕적 가치를 통해 신의 은혜와 연결된 독창적이 서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QrZ-XMYuY - 'QR코드'로 연결해서 감상하는 심청가 中 심봉사 눈 뜨는 대목


1-2 기적의 박 씨: 사랑과 희망의 선율 <흥부가>

<흥부가> 속에는 인문학과 철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고통과 희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 그리고 정의와 부조리라는 주제들에서 당시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 흥부의 인내와 긍정적인 태도는 그가 겪는 고난을 단순히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미래의 가능성을 믿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희망을 상징한다.


1-3 달 아래 맹세: 춘향과 이몽룡의 노래 <춘향가>

음악적 문학적으로 빼어난 <춘향가>는 판소리 명창이 독창적으로 소리와 사설, 발림을 짜넣으면서 성장해 왔다. <긴 사랑가>, <쑥대머리>, <팔도 담배가> 같은 곡은 춘향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전해졌다.

춘향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몽룡을 믿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다. 사랑을 지킬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남원시 운봉읍 '국악의 성지' (2020. 05.20 촬영) / 춘향가 중 '사랑가' - 당시 배건재 '국악의 성지' 판소리 파트 담당의 판소리


판소리 부르기에서는 '꺾기'와 '강약 조절'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만 잘 따라 하면, 일단 판소리를 제대로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가'는 3소박 4박자로 중중머리 곡이다.


우리 판소리는 전승 지역의 특징에 따라 구분하며,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서 처음으로 동편제·서편제·중고제 등으로 구분했다.

동편제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 지역인 남원 운봉·순창·구례·흥덕 지방에서 전승되어오는 판소리다. 소리가 거침이 없고, ‘우’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곡조로 맑으면서도 강인하다. 시작은 무게감이 있고 점잖게 느껴지나 구절 끝마침을 되게 하여 쇠망치로 내려치는 듯이 강하게 부른다. 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꾸며 주는 꾸밈음을 사용하고, 마디마디 무거운 발성을 쓴다. 노랫말을 선율에 붙일 때는 굵고 능숙하게 기교를 마음대로 부려 쓰기도 한다. 소리의 끝은 구절마다 음을 짧게 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4 심해의 계략: 꾀와 용기의 교향곡 <수궁가>

<수궁가>는 <구토지설>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왔다. <구토지설>은 불교의 전파가 성행했던 시기, 불전 설화가 들어오면 널리 알려졌다. 병이 난 남해 용왕의 약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는 도사를 말을 듣고, 별주부인 자라가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별주부는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지만, 토끼는 죽음의 문턱에서 꾀를 내어 도망친다.

용왕의 병은 다름 아닌 술병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봉건국가의 무능한 왕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별주부와 토끼는 이런 왕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수궁가를 듣다 보면, 내일(6월 3일) 있을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동안 지리멸렬에 빠져든 좌우 진형 대립에 지쳐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1-5 운명의 강가: 바람과 불의 교향 <적벽가>


<적벽가>에 등장하는 조조의 군사들은 조조를 부당한 지배층으로 빗대어 표현한다. <<삼국지연의>>에서 뛰어난 두뇌로 전쟁을 위풍당당하게 진두지휘하던 조조는 이곳엔 없다. 이곳엔 오직 한 명의 부당한 군주만 있을 뿐이다. 대의를 위해 차출된 군사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정작 대의보다 개인사가 더 중요했다. 집에 남겨둔 가족과 자신의 미래가,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의 삶과 가깝고 중요했으리라. <적벽가>는 우리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0ANtFqFl8 - 'QR코드'로 연결해서 감상하는 '적벽가'



P A R T 2 잃어버린 조선의 아리아들

2-1 변화의 하모니: 삶을 바꾼 깨달음의 노래 <옹고집타령>

박동진 명창이 복원한 옹고집타령의 핵심 주제는 "사람이 누구나 다 고집 없는 사람이 어디가 있겠는가. 고치면 되느니라."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 방향이 희망을 향하고 있다는 화자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말씀이다. 현대 사회에도 고집 센 옹고집들은 있기 마련이다. <옹고집타령>을 감상하면서 개과천선한 옹고집을 떠올려 보는 것도 즐겁다. 누구든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고 누우치면 고치게 될 것이다.


2-2 깃털의 노래: 장끼의 모험과 희생 <장끼타령>

<장끼타령>은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이지만, 안타깝게도 창을 잃어버린 소리 중 하나이며, 일명 자치가(雌雉歌)라고도 한다. 소설 <장끼전>은 판소리였던 이야기를 어림짐작하게 해주는 사설 중 하나이다.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열두 아들과 아홉 딸을 둔 장끼 까투리 부부의 말다툼으로 그 내용은 꿩을 의인화하여 남녀의 절개 없음을 풍자했다. 장끼타령은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깊은 교훈을 전한다. 장끼는 욕망과 고집을 상징하며, 까투리는 경고와 이성을 뜻한다. 장끼의 죽음은 어리석은 고집과 욕망이 결국 자기 파멸로 이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3 강쇠의 비극: 사랑과 운명의 변주곡 <변강쇠타령>

<변강쇠타령>은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다. 청상살(靑孀煞)을 가진 옹녀는 마을에서 쫓겨나 길을 가던 중 변강쇠를 만나 결혼하여 지리산에 정착한다. 그러나 변강쇠는 빈둥거리며 놀 거리만 찾고, 옹녀는 그런 강쇠에게 나무라도 해오라고 시킨다. 그 말에 변강쇠는 장승을 베어와 나무로 쓰기로 하다가 죽게 되고, 장례를 지르려던 옹녀는 여러 고초를 겪는다. 변강쇠타령은 두 사람의 다사다난한 유랑 생활 통해 유랑민의 비극적인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곡에는 유랑민의 애환과 슬픔이 담겨있다.


2-4 숙영의 노래 : 운명을 거스른 사랑 <숙영낭자전>

<숙영낭자전>은 사랑과 희생, 운명과 도덕적 갈등, 천상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신화적 요소와 인간의 현실적 갈등을 결합, 사랑의 영원성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선녀와 인간의 만남은 천상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판소리 특유의 상상력과 심리적 깊이를 잘 담아냈다.



P A R T 3 삼국시대 뮤지컬 _향가

3-1 도솔가의 울림: 하늘과 땅을 잇는 선율 <도솔가>

<도솔가>에는 신라 경덕왕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설정하여 왕권의 정당성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범패가 아닌 향가로도 부처를 감동시킨 월명사의 노래를 통해, 진심을 다해 바라고 기원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화를 바라던 신라인들의 마음이 어찌 현대인의 마음속까지 와닿지 않겠는가! <도솔가>는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곡이다.


3-2 서동의 노래: 사랑과 지혜로 엮은 서사 <서동요>

<서동요>는 간절한 사랑의 감정과 사회적 신분의 장벽을 넘으려는 노력을 다룬 작품으로, 선화공주를 향한 서동의 간절한 소망이 간절하게 드러난 곡이다. 곡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흐름은 향가의 전형적인 감정 고조 방식을 따랐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표현으로 서동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3-3 사랑의 꽃, 운명의 노래: 헌화가와 해가 <헌화가 & 해가>

KakaoTalk_20250603_115248976.jpg?type=w966 'QR코드'로 감상한 <헌화가>의 한 장면

<헌화가>와 <해가>는 신라 제33대 성덕왕 시대에 불리기 시작한 4구체 향가이다.

<헌화가>는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곡으로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건한 추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다가서고 싶고, 때로는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려는 헌신의 마음이 담겨있는 향가이다.

<해가>는 사랑하는 이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용기를 담은 작품이다. 당시 남성적 기개와 함께 사랑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의 진폭이 담겨있다. 바다라는 신비와 공포의 존재 앞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부름은 결코 멈추지 않는 곡이다.


3-4 처용의 미소: 고통을 넘은 용서의 춤 <처용가>

신라 헌강왕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8구체 향가인 <처용가>는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역산에 관해서는 병든 도시의 한량이거나 패륜아, 타락한 화랑의 후예 등 그럴듯하게 실존했을 것 같은 인물들로 제시되기도 한다. 아내를 범한 역신과 그것을 보게 된 처용. 어쩌면 역신은 그 시대에 가장 두렵게 여겨지거나 문제시되었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역신은 누구(무엇)일까? 두려움의 범주가 넓어졌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역신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3-5 이별의 선율 :잊지 못할 사랑의 노래 <원가>

<원가>는 주술에 바탕을 둔 서정을 훌륭히 구현해 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전반을 흐르는 쓸쓸한 마음이, 달그림자나 연못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졌고, 이는 잣나무를 시들게 만든 원망의 마음을 - 체념하거나 이해하거나, 혹은 더 매섭게 화내거나 저주하는 말로 - 생생하게 담아냈다.



P A R T 4 고전의 발라드 _고전시가

4-1 두 개의 마음: 하여와 단심의 선율 <하여가 & 단심가>

<하여가>는 이방원의 의도가 담긴 시조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와 같은 상대적 가치 판단을 통해, 왕조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 시조에서는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이 강조되며, 신진사대부의 급진적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단심가>의 첫 구절 '이 몸이 죽고 죽어'는 정몽주의 충성이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고백하는 정신적 결단을 나타낸다. 자기희생과 충성이 정몽주에게는 존재의 이유이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 국가와 왕에 대한 헌신이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2 그리움의 선율: 떠난 이를 향한 마음의 노래 <임제의 한우가 & 한우의 화답 시>

조선시대 한우와 임제가 주고받았다고 알려진 이 시조는 <<해동가요>>와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해동가요>>에는 임제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있다. 임제는 선조 때 과거에 급제, 벼슬은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타며, 노래를 잘 부르는 호방한 선비였다. 그는 이름난 기생 한우를 보고 <한우가>를 불렀다. 그날 밤 한우와 동침하였다." 높은 벼슬을 지냈던 임제뿐만 아니라 그에 밀리지 않는 답가를 노래한 한우 역시도 수준 높은 예술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 소 판서의 마지막 인사: 이별과 희망의 선율 - 황진이와 소세양 이야기 〈봉별소판서세양〉, 〈소요월야사하사〉

황진이는 고요한 밤을 통해 소세양에 대한 그리움과 불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뒤척이는 잠자리엔 꿈인 듯 생시인 듯'이라는 구절은 불확실한 감정과 사랑의 혼란스러움을 나타낸다. 단어 하나로 서로의 속뜻을 간파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몇백 년이 지난 후, <소요월야사하사>는 가수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라는 노래 가사의 모티브가 됐다.


4-4 버들가지 아래 맹세: 사랑의 약속 - 홍랑과 최경창 이야기 〈묏버들 가려꺾어〉, 〈송별〉

홍랑과 최경창의 이야기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리움, 그리고 인연의 깊이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묏버들 가려꺾어〉에서 '묏버들(산버들)'은 이별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송별>은 이별 후에 느끼는 깊은 슬픔과 고통을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마음을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며 시적 감수성을 가득 담은 작품이다.



P A R T 5 달빛 아래 붉은 실_ 고전소설

5-1 영혼의 교차로: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선율 <이생규장전>

15세기 김시습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소설이라 알려진 <이생규장전>은 <<금오신화>>에 담겨 전해진 이야기다.

고려 공민왕 시기에 살던 이생은 최랑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처음부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가며 힘겨운 사랑을 시작한다. 우리 전통 이념의 하나인 '효'를 따르지 않는 주인공의 등장은 고전소설에서 흔치 않은 경우이다. 두 사람은 이후, 홍건적이라는 더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 난항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생과 최랑은 강렬한 사랑의 의지와 열망을 보여준다.

귀신이 된 최랑은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이생과의 사랑을 이어가지만, 결국 연이 다하면서 다시 어그러지고 만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 효의 실천보다 중요하다는 뜻을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단 자신이 추구하는 두 가지의 가치가 서로 상충할 때, 둘 중 무엇을 따를지 고민하던 15세기 젊은이의 모습을 대면하게 해준다.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가치더라도 살면서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생규장전>을 통해 서로의 열망에 충실했던 두 사람이 선택한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5-2 사랑을 품은 이름: 옥단춘의 전설 <옥단춘전>

<옥단춘전>은 선한 자가 보상을, 악한 자가 벌을 받는다는 옛 선조들의 이념을 보여주는 고전소설로, 이혈룡과 김진희의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우정의 파탄을 그려, 당시 조선시대의 독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기도 했다.

<옥단춘전<>은 이야기의 유사성 때문에 <춘향전>의 아류작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자신을 배신한 김진희에 대해, 여전히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는 혈룡의 마음은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김진희와 하층민이지만 신의를 지키는 옥단춘의 모습은 오랫동안 단순히 계급과 신의를 연결 지어 생각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준다. 기생 옥단춘은 절개와 지조를 지킴으로써 훗날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되고, 이러한 서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해주기도 한다.


5-3 울려라, 금방울: 희생과 승리의 서사시 <금방울전>

작자도 창작 연도도 알 수 없는 <금방울전>은 태안주의 이릉산에 살던 장원이라는 사람이 꾼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남해용왕의 딸인 신혼의 금령은 죽임을 당하고, 동해용왕의 아들인 해룡은 죽음을 피하려 인간으로 환생한다. 금령은 환생한 해룡이 고난을 이겨내는 데 적극인 도움을 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설화적 성격이 짙은 상황으로 펼쳐지고, 마침내 결혼으로 이어진다.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특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특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하여 위로를 건넨다. 두 사람의 힘겨운 삶은 피지배계층의 독자들과 다르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평범한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5-4 운명을 바꾼 사랑: 정수정의 전설 <정수정전>

<정수정전>은 조선시대 고전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도 여성의 권리와 자기 주도적인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수정은 여성이 독립적 역할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성 평등이 시대를 초월하여 관통하는 주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는 조선시대 부부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맹종의 관계를 뛰어넘는다. 정수정의 기개와 용기, 담대함과 능력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 자신에게도 어느 순간 그 단단함이 깃드는 것만 같은 이야기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우리 판소리와 향가 속에서 면면히 흘러왔다.

고전 소설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과는 현재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은 고민과 성장통을 공유하며 비슷한 삶의 궤적을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와 사회를 가로 자른 편협된 문화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선과 악, 효와 불효, 평등과 불평등의 대립조차 우리 소리에서는 넓고 깊은 해학으로 승화시켜 담아내고 있다. 『방구석 판소리』 책을 읽고, 판소리와 타령을 감상하다 보면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인다. 세월이 흐를수록 국악의 참맛을 조금씩이나마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건, 한국인의 원형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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