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는 청각과 언어의 제약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 근대 화단의 대가
지금,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는 운보 김기창의 작품세계를 알리기 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초기 1930년대 작업부터 후반기 1990년대 작품까지 모두 아우르며, 다양한 작품 연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운보의 미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운보의 후기 작품들은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시도한 여러 실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시기간: 2025. 02. 18 ~ 2026. 03. 22
관람시간: 월 - 일요일 11am - 7pm
휴관일: 1월 1일, 추석, 신세계 백화점 천안점 휴일
관람료: 성인 3,000원(65세 이상 성인 1,500원), 청소년 2,000원
운보 김기창(1914-2001)에게 '세상의 소리'는 5세 전후까지 스며들었던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으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는 언어 획득 전, 홍역으로 인한 고열로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후천적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발성은 가능했으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가족이나 지인들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듣기가 불가능했다.
운보는 손짓과 입 모양(구화)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억양과 감정이 실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 주변의 관심과 이해, 그림 그리기를 등을 통해 청각과 언어의 제약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 근대 화단의 대가이다.
2층 전시장에서는 영모, 화조, 풍속화 대표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뒤쪽으로 가면, 신앙화, 인물, 추상, 문자도,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 운보 시리즈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화조영모도'에 등장한 군마, 투계, 부엉이 등을 바라보노라면, 운보 특유의 거침없고 역동적인 붓 칠에서 넘치는 생동감이 드러난다.
'등나무와 참새'는 운보와 우향 부부의 쉽게 만날 수 없는 대형 합작품인 4폭 병풍이다.
우향이 먼저 등나무를 그린 뒤 운보가 참새를 그리고, 글을 더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화조도'에서도 운보의 거침없는 표현미와 섬세함이 화면을 가득 채운 뛰어난 구도가 돋보인다.
김기창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17세 되던 1930년,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에게서 전통 산수화와 인물화 기법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이후 최고의 창덕궁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수상을 했다. 이 시기 운보는 사실적인 구상 미술에 주력했다.
*김은호 화백의 일본식 이름은 쓰루야마 마사시 노기(1892. 06.~1979. 02.)다. 1919년 3ㆍ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적도 있으나 1920년대 후반,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식 채색화 기법을 익히면서 친 일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 후, 친일 경력이 문제 되어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망라된 조선미술 건설 본부에서 제외되기도 했으나, 슬그머니 다시 미술계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김은호는 2009년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발표, 친일 반민족 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된다. 두드러진 친일 이력과 일본풍의 화풍으로 그가 그린 논개와 춘향 영정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논란을 일으켰다.
운보 김기창 역시 일제강점기 행적으로 친일 반민족행위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대표 화가가 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성과로 친일행적이 그냥 지워지는 것은 아니어서 크게 안타깝다. 다만, 말년에 이에 대해 반성했다고 알려졌다.
살아생전 친일행적으로 그의 작품들이 빛바래 지질 않길 바라는 한편, 사람이라면 늘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투계'에 등장하는 쌈닭 2마리는 액자 속에서 전시장 안으로 그대로 튀어나올 듯 생동감이 넘친다.
앞에서 감상한 1972년작 '밤새(부엉이)'와 '군마도'에서는 운보의 거침없고 역동적인 붓 칠의 생동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작품 '비파도'와 갤러리 입구에 맨 처음 전시되어 있던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1971)도 운보의 빼놓을 수 없는 수작(秀作)이다.
2층 전시실에서 마지막으로 감상한 왼쪽 '화조병풍' 뒤로 '군마도'의 일부가 보였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자, 로비에서 전시실을 등지고 서있는 조각상 앞으론 조각공원이 아련하게 드러났다.

이제 3층 전시실로 이동한다.
2층 로비에서, 출입문 쪽으로 내다보이는 조각 공원의 풍경이 분주한 밖과 달리 묘한 정적을 담아 보낸다.
6월 24일 화요일 오후, 봄비가 살짝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일까!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코너 오른쪽으로 아르망의 '수백만 마일'이란 원통형 작품과 데미언 허스트의 인간 해부도 같은 작품 '찬가'도 늘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갤러리에 들릴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든다.
3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만난 운보 화백의 '미인도'
3층 전시장에서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계단 왼쪽 아담하게 구획 지어진 전시실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1950년대 초반에는 신앙화 시리즈를 그려 주목을 받았다.
예수의 출생부터 부활까지 총 30점의 연작으로 구성된 작품 <예수의 생애>(1952-1953)는 화풍뿐 아니라 배경, 복장, 인물 등을 모두 조선 시대로 변환시켜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은 운보 김기창의 아내이기 이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이다.
1946년 우향과 결혼한 운보는 함께 새로운 화풍 실험에 주력, 당시 일상을 그린 풍속도에서는 공간을 분할하고 재조립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입체주의적 작품과 반추상 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우향은 운보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반자로서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고민했던 동료 작가이기도 했다.
우향은 1944년 일본 도쿄 여자미술 전문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제8회 대한 미술협회전과 제5회 국전에서 각각 대통령 상을 수상한 인재였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에 출품했던 우향은, 1964년 운보와 함께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현지에서 부부 전을 열기도 했다. 운보는 1976년 우향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아내를 기리며 시를 쓰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된 우향의 작품에서는 힘차고 시원한 붓질과 과감한 구도가 돋보인다.
운보와 더불어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시기, 우향의 대표 작품 '불안'(1962)을 감상해 본다. 당시 해외 미술계에서 유행하던 *앵포르멜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에서 대상성은 사라졌다. 황색과 적갈색의 추상성이 강조된 덩어리에서 전해지는 번짐 효과가 그늘진 불안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듯했다.
*앵포르멜(Informel 또는 Art Informel): 비정형 미술의 한 경향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 운동이다. 앵포르멜은 '형식이 없다'는 뜻의 프랑스어 'informel'에서 유래되었으며, 기존의 형식적이고 규율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감정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작품'(1960년대)에서도 우향의 추상적인 감각이 강하게 전해지는 앵포르멜의 영향이 느껴진다.

우향의 작품 6점의 집중 감상을 마치고, 다시 운보의 작품세계로 들어섰다.
3층 메인 전시실을 가장 나중에 둘러볼 생각을 하면서, 다음 발길 닿은 곳은 3층 전시장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전시실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연대를 총망라한 운보의 소품들 전시되어 있어, 김기창 화백의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누렸다.
운보의 '노점'과 우향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노점’을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운보는 시장 한복판 노점 주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냈으며, 우향은 노점 주변을 가득 채운 여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운보의 '노점'은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대화를 모색하던 작가의 초창기 고민과 시도가 엿보이는 중요한 작품으로 입체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우향의 '노점'은 화폭을 구획한 화면 구성이 정교하면서도 대담하며 더 현대적이다.
우향은 이 작품을 통해 추상화의 결합을 시도했으며, 화폭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으로 한국미술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전 수묵채색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붓 칠과 구도였다. 우향은 이 작품으로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전시회에서는, 운보의 70년 작품 (1930년대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후기 작품들까지)을 한 곳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일찍 화단의 인정을 받았지만, 안정적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미적 탐구와 실험정신을 구현해 온 운보의 작품 변천사를 두루 살펴보기에 부족함이 없던 기획 전시이다.
김기창 화백은 1950년대 후반, 한자의 획을 자유분방한 운필로 표현하며 추상화한 문자도를 선보여, 한국화의 추상화 가능성을 시도했다. 이 시기는 운보의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가 크게 주목을 받던 때이기도 했다.
운보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추상작품을 시도하기 시작했으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대화를 제시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6년 급작스럽게 아내 우향과 사별한 후, 그는 오랫동안 매료되었던 민화 특유의 바보스러운 해학성과 서민의 소박한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바보산수’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산 전면을 녹색으로 짙게 표현한 ‘청록산수’ 연작을 그렸다.
1990년대 초반에는 봉 걸레를 먹에 찍어 대형 화폭에 그린 ‘점과 선’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운보는 후천성 청각 장애인으로 표현해 내기 어려웠던 그의 생각이나 감정을 붓 칠을 통해 화폭에 생생하게 드러냈다. 그는 시각적 언어인 그림을 통해 섬세한 내면의 감성과 자유분방한 외침을 마음껏 표현한 예술가였다.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다시 2층 로비로 내려왔다.
'아라리오 모던 스토어'를 둘러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쇼핑만으로도 흥미로운 장소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오른쪽으로 김인배 작가의 'I love you' 흰 조각상이 보였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바라보이는 왼쪽이 조각 공원이고, 오른쪽 건물이 신세계백화점 천안점이다.
아라리오 갤러리 건물 1층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널찍한 커피 전문점도 있다.
신부동 '만남로' 거리는 늘 사람과 차량들로 붐비는 활기찬 곳이다.
문화 예술과 쇼핑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천안천변 산책도 즐길 수도 있는 핫한 거리이다. 남녀노소 모두 즐겨 찾는 곳이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곳이니 거리의 공기 자체가 혈기 왕성하달까!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을 나서자, 간간이 빗발이 날리기도 했지만, 그냥 맞고 걸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폰 카메라 속엔 평소보다 좀 무거워 보이는 풍경이 담겨 살짝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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