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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Oct 15. 2024

육아와 글쓰기의 공통점

설명하면 지는 거?

숙제를 하나 받았다. 지난 토요일에 다녀왔던 드론쇼를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라는 것. 나 역시도 글을 쓰면서, 어딘가 참 밍밍하다 느꼈다. 그래. 그래. 그 장면을 너무 설명하듯이 쓴 거야. 글이 건조해지잖아. 이번엔 마치 드론쇼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써보자.


'...'


마음먹은 대로 뚝딱 쓸 수 있었다면, 진작에 썼겠지.


묘사 글쓰기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샌드라 거스 <묘사의 힘> 이 가장 많이 떴다. 책 추천, 책 리뷰, 묘사 글쓰기 강의 등등 사이트에서, 저자의 말을 인용해 '묘사'를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몰라서 못쓰나.

육아와 글쓰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에지간히 힘들고,

내 마음처럼 되지 않고, 

방법을 알아도 실전 적용은 잘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끊임없이 시도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정신으로 키우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정신으로 끼적여볼 밖에.

 

무대에서는 불쇼, 공중에선 크레인에 의지해 곡예하듯 춤추는 댄서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불꽃놀이까지. 환호성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개막작으로 불꽃쇼가 펼쳐졌다. 무대가 낮아 뒤쪽에선 공연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 키보다 높게 피어오르는 불기둥을 보며, 일곱 살 아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기둥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반딧불 같은 불꽃들이 하늘로 퍼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파아악' 소리. 마치 근육질 뽐내는 대장장이 대장간에라도 놀러 온 듯. 불. 철. 물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땅 위에선 불꽃쇼가 진행되는 동시에 하늘에선 크레인에 몸을 맡긴 댄서들이 불새가 되고, 꽃도 되고 나비도 되어 날아다녔다. 세 명이 한데 웅크리고 있다 퍼지면서 꽃술이 되어 그중 한 명이 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올 땐 나도 모르게 아들을 꼭 안았다. 내 심장으론 저 높이에서 손도 까딱 못 할 터인데 말이다.


무대 위 불꽃쇼가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더니 하늘 위 불꽃놀이로 이어졌다. 드론쇼인데 여기에서도 금빛 폭죽이 터질 줄은 몰랐다. 그래서 깜짝 선물처럼 더욱 반가웠다.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다니. 감사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파바박 팡팡 터지는 폭죽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들을 한 번 더 꼭 안아 주었다.


드디어 시작된 드론쇼. 무대 뒤편에서 일사불란하게 하늘로 떠오른 순간, 유명 연예인이라도 보는 듯 설렜다. 천 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보면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색색으로 변하며 피터팬이 되었다가, 인어공주가 되기도 하고 멋진 성문이 되어 열리기도 했다. 견우와 직녀도 되어 주었고, 거대한 배가 되어 항해하기도 하며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변신을 했다. 앙코르를 외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드론쇼.

시간이 정지한 듯 사방이 고요해졌다. 무대 뒤편에서 순식간에 천 대의 드론이 동시에 하늘로 떠올랐다. '오!' 수십만의 인파가 한 목소리를 냈다.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춘 드론은 칼군무 준비하는 정예요원 같기도, 고도로 훈련된 무용수 같기도 했다. 반짝이는 기계를 보며 가슴이 콩닥거리다니.


드론쇼에 대한 경험치는, 일곱 살 아들과 다르지 않았다. 까만 하늘 위로 새겨지는 피터팬과 팅커벨은 곧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물방울이 되어 사라졌다. 넋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익숙한 리듬을 들으며 나의 멘털도 함께 물방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 둘 반짝반짝하던 드론은 이내 차르르 푸른 불빛이 켜지며 성문으로 변했다. '와!' 수십만이 다시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파랗던 문 옆으로 피어오르던 덩굴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러자 성문도 금빛으로 더욱 환하게 빛나며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들어와...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요정에게 위로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계가 주는 위로인 걸까.)


점점 더 웅장해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출렁이는 바다. 그 위를 항해하는 거대한 돛을 단 선박은 드론 쇼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했다. 끝나지 마라. 아직 끝나지 마라. 조금만 더 배을 띄워라. 내가 너를 더 보고 싶구나.


이런 맘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오래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로 변신한 드론은 이별의 아픔을 달래주었다.




합평시간에 어떤 평이 돌아올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육아와 글쓰기는 기쁨과 고통을 번갈아 안겨주며 나를 담금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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