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자연의 천국 - 뉴질랜드)
50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
되돌아보면 지난 40여년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고 가장 빠른 기간에 선진국에 준하는 걸음을 달려온 대한민국을 지난 2016년 2월 떠나왔다.
지구 반대편 나의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 - 뉴질랜드이다.
영어권의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뉴질랜드 였을까?
첫째 : 미국은 지구 최강의 천조국이지만 걸핏하면 뉴스에 나오는 총격 사건 등 각종 범죄들로 인한 부정적인 부분들로 인해 제외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1세기 이상 지금도 세계를 주무르는 나라이기에 언젠가는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하는 나라이다.
둘째 : 캐나다는 영국 연방 국가이지만 미국과 인접한 나라로 미국식 영어권 이어서 선호국일 수 있는데 겨울에 너무 춥다는 사실이 제외대상이 되었다.
셋째 : 영국은 영국식 영어의 대표격인 나라로 선호하는 나라이지만 이민의 관점으로 봤을때영주권 획득하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제외대상 이었다.
넷째 : 호주는 남반구에 속한 나라로 영국 연방 국가로 영국 영어 및 호주 영어 또한 존재하지만 결정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차별이 아직 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났고 이민의 문호 또한 어려워지고 있다는 판단에서 제외대상 이었다.
다섯째 : 뉴질랜드는 영국 연방 국가이면서 영국 영어 및 뉴질랜드 영어 또한 존재한다. 억양이 조금 거칠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더군다나 이민에 대한 문호가 나름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전적으로 주관적인 의견이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민은 말그대로 나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송두리째 바뀌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본능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과거 내가 한국에서 했던 일들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고 살아내기 위해, 체류하기 위해 거쳐야할 안정된 제도적 장치의 테두리 안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말그대로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한 걸까 ? 주위를 둘러보면 먼저 이민 온 가족이 실타래 엮이듯 자기들의 친척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듯 온 것이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 체류의 자유는 있지만 거주의 자유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체류를 위해 비자를 계속 연장해야 하는 기간의 연속이며 고용주에 메인 비자일 경우 속칭 "비자 노예" 라는 미명아래 그저 숨죽이고 버텨야만 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을 받고 이제는 내가 해보고 싶은 일과 함께 더 이상 비자에 얽매이지 않고 거주의 자유 또한 누리게 되었다.
해외살이의 고충은 언어의 장벽 즉 영어로 인해 항상 부딪히지만 이제는 생활의 일부이기에 가랑비에 옷젖듯 젖어들고 있다.
수퍼를 가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공존한다. 그들 모두 저마다의 영어 억양과 발음으로 소통한다.
한가지 걸리는 부분은 한국에 혼자 계신 어머니 물론 근처에 이모님이 같이 계시긴 하지만.
효자 컴플렉스는 아니지만 주위에서 아들 노릇못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너희들 잘지내면 된다며 나는 잘지내고 있다고 안심하게 말씀하신다.
우리 가족의 처음 출발은 딸의 교육이었지만 지내면서 와이프 또한 이곳의 긍정적인 부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단 아쉬운 부분은 의료적인 부분 아플때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없다는 부분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로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부분이 있다.
우리 둘은 그렇다치더라도 딸은 이곳에서 학교 보낸 보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껴본다.
그렇다고 영어를 등한 시 할 수 없기에 늘 현지인들을 만나면 말 걸어 보려고 집적대고 있다.
고객 서비스 왔다가 근처 해변을 걸으며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주저리주저리 해봤다.
가끔씩 여기는 어디고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반문해 본다.
내게 있어 가장 어려운 도전인 이민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있으며 그 속에서도 매일매일 작은 도전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