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클한 순간
오늘은 고객 서비스를 한 곳이 지난 2017년 부터 2020년 까지 3년간이나 살았던 집의 근처였다.
이 기간은 저희 가족에게는 눈물의 시간이었고, 기도의 시간이었다.
우리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 아닌 고용주의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인해 약자로서 감당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법률적인 절차를 통해 이민성을 상대로 1차적으로 대응했지만 패소했고 이후 2차적인 대응을 통해 추가로 1년 이라는 시간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었던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된 6주간 매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새벽기도에서 졸림과 함께 눈물없는 나에게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렸었던 눈물들의 시간) 이 지나서야 결국 승소에 준하는 결과를 얻음으로 다시금 체류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데 이번에는 고용주의 과오로 인해 체류를 연장할 수 있는 비자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처지에 있을때 새로운 고용주를 찾아 지방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했던 시간들.
시간이 지나 딸의 대학 입학 전까지 영주권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국내학생이 아닌 국제학생으로서의 엄청난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을 하려고 할때.
별안간 정부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 떠나지 않고 굿굿하게 버텨준 비자 체류자들에게 신청 조건을 충족 시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전대미문의 정책을 발표하게 됨으로 천운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후 국제학생으로서 감당해야만 했던 딸의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도 이번 정책 관련해서 영주권 신청 대상 가족의 자녀들에게 국내 학생 기준을 적용하게 배려를 해줌으로 인해 등록금을 낼 수 있게 됨으로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이사를 갔던 지방에서 이전 고용주로 인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해 어렵게 국선변호까지 진행하면서 싸워야 했고 다시 1년이 지난 시점에 국선 변호시 소요되는 모든 비용 및 손해에 대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희 딸의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었던 일들.
마침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이 나라에 보탬이 될까를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잘 버텨준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들이 그 누가 각본을 짤 수 없을 만큼 스펙타클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저희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혹자는 이런 저희들의 사연을 두고 이렇게 법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린 경우는 보기 힘들다고 아니 없었다고 했다.
지인 목사님이 한편으론 이런 스토리를 토대로 책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해주셨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