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시장에서 유자차와 김치전을 판다고?

마장동 축산시장 아지트 입성기

by 육그램



애정하는 공간이 있나요? 혼밥 하기 딱 좋은 식당이라던지 자주 가는 카페의 숨은 명당자리, 내 취향을 저격해버린 옷가게 같은 것들. 나만 누리고 싶다가도 어쩔 때는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은 변덕의 결정체! 몇 달 전에는 소문내고 싶은 애정의 공간이 또 생겼다. 마장동 축산시장 내에 위치한 주전자 다방과 단비 분식.



주전자 다방과 단비 분식은 시장에 자주 들락날락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사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시장의 상인 분들이 애용하던 공간이다. 고객의 99%는 oo축산 oo사장님. 그러고 보니 상인들의 ‘아지트’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마장동 축산시장을 방문하신 분들은 이 아지트를 슬쩍- 이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밀의 공간에 몰래 입성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주전자 다방


각종 음료나 주전부리를 판매하고 있다. 음료는 한 잔에 500원. 메뉴는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늘 먹던 그것을 시키거나 얼핏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시킨다. 시장 골목이 찬바람으로 서늘해질 때 새콤한 유자차는 추위를 이겨낼 종합 비타민이 되고, 톡 쏘는 막걸리는 황소 힘을 솟게 할 에너지 드링크가 된다.



주전자 다방의 내부는 매우 아담하지만 잠시 몸을 녹였다 가기에는 충분하다. 겨울철 영혼의 단짝, 전기장판이 늘 내부를 후끈하게 데우고 있어서 따뜻하고 편안하다. 이렇게 셋이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으면 옆 가게 사장님들의 대화를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맞은편 대보식품 오돌뼈 사장님의 패션 센스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 날도 역시 핑크 귀도리) 조용히 끓고 있는 주전자를 보고 있으면 왠지 오래된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느낌도 든다.


☆귀여움주의☆


아참, 주전자 다방은 가칭이다. 이곳은 메뉴판뿐만 아니라 간판도 상호도 없다. 정해진 영업시간도 없어서 그저 주변 가게들과 함께 아침을 열고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쩌다가 이 아지트를 발견한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놀러 가보자. 따뜻하고 포근한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단비 분식


학교 앞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분식집이 축산시장 안에도 있다. 어묵꼬치, 떡볶이, 김밥, 토스트... 많고 많은 메뉴 중에서 가장 인기 좋은 상품은 x이슬. 이것은 분식집인가 포차인가.



이 아지트가 가진 장점은 다양하다. 첫 번째 장점은 누구나 빠르게 아지트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 처음 단비 분식을 알게 된 건 유난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끌려서였다. 궁금해서 주변을 기웃거렸더니 사장님은 어느새 술잔을 건네시는 중.. 복잡하고 귀찮은 가입 절차를 없앤 신개념 아지트, 단비 분식.


두 번째 장점은 묘하게 매력적인 회원들. 다른 날 역시 단비 분식에 놀러 갔었다. 뉴 페이스의 등장에 시선이 집중되던 찰나에 김치전이 살짝 그을렸다. 탔네 탔어. 미련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업장으로 복귀해버리는 사람들. 머쓱해진 사장님의 당황스러운 손짓과 아까운 김치전만 남았다. 이 곳 회원들은 조금 까다롭지만 묘한 매력을 가졌다.



아지트의 마지막 장점은 주인이 없어도 운영에 차질이 없다는 것. 분식집 사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정육점 사장님이 대신 불 앞을 지킨다. 셀프 서빙에 셀프 계산까지 척척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별한 서비스가 없어도 언제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단비 분식은 진정한 아지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축산시장에서 유자차와 김치전을 판다고?


마장동 축산시장은 고기를 사고파는 공간이기 이전에 축산 기술자들의 일터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시장에서 땀 흘리며 보내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쉼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달콤한 유자차로 몸을 녹이고, 김치전을 안주삼아 소소하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주전자 다방과 단비 분식은 시장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애정하는 공간이 됐다.






글_김민주



매거진의 이전글올해엔 꼭 먹고 말겠어 (feat. 고기 버킷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