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같은 삼겹살은 없다.
육즙을 머금은 살코기와 고소하고 부드러운 지방의 완벽한 조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삼겹살은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 푸드로 자리 잡았다. 두툼하게 썰어서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구워낸 고기 앞에서는 저절로 경건해지고 치이익-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는 어느새 고기 교향곡으로 재탄생, 마음에 평화를 준다.
한국인은 삼겹살을 사랑한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을 만끽했던 곳은 언제나 냉동 삼겹살집이었고, 회식자리에서는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면서 묵은 스트레스를 씻어냈다. 마음에 드는 반찬이 없는 날에는 외식으로 삼겹살을 먹자고 졸랐고,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핑계로 오늘 저녁 메뉴 역시 삼겹살을 떠올렸다.
틈만 나면 삼겹살을 찾는 사람들. 그런데 삼겹살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흔한 삼겹살 맛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주목하자. 돼지고기의 원산지나 품종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준비했다.
육안으로 봤을 때 단면적이 넓은 것이 칠레산이고 좁은 것이 독일산이다. 칠레산 삼겹살은 지방의 비중이 높아서 기름지고 고소한 풍미를 즐기는 분들에게 알맞다. 칠레가 돼지를 통통하게 살찌울 수 있는 비결은 연중 내내 선선한 날씨에 있다. 고산지대가 속해있는 칠레의 여름철 최고 기온은 23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차디찬 겨울에 맞서며 자란 돼지는 열심히 지방을 키운다.
독일산 삼겹살은 단면적이 좁고 날렵하게 생겼다. 상대적으로 지방의 비중이 적어서 담백한 맛. 그래서 구이용 뿐만 아니라 보쌈, 수육용으로 두루두루 활용하기 좋다. 독일은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균일한 품질의 돼지고기를 생산해 내기 때문에 언제 먹어도 그때 먹었던 그 삼겹살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코 흑돼지와 제주 흑돼지는 품종 특성상 기본적으로 육질이 쫄깃하고 탄력 있다. 충분한 운동량에서 나오는 이베리코의 쫄깃한 육질은 이미 매력적이지만 더 눈에 띄는 이베리코의 특징은 엄청난 지방 함량이다. 다소 거북해 보일 수 있지만 살코기만큼이나 지방도 탱글탱글해서 많이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다. 뱃속을 제대로 기름칠하고 싶은 날엔 이베리코를 추천한다.
육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제주 토종 흑돼지 맛의 비밀은 물에 있다. 제주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지하수에도 흙과 돌의 성분이 섞여있다. 제주만의 깐깐한 물을 마시고 자란 돼지는 자연스럽게 육질이 탄탄해진다. 게다가 콜라겐 덩어리인 돼지 껍데기가 더해진 흑돼지 오겹살에서는 쫄깃을 넘어선 쫀득의 경지를 맛볼 수 있다.
드라이에이징은 응축된 육즙의 깊은 맛을 표현해내는 방법이다. 50일 이상 딥 드라이에이징 한 삼겹살은 지금까지의 삼겹살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선사한다. 구웠을 때 고소한 치즈와 견과류의 향이 나고 감칠맛이 증가해서 소금 없이도 맛있다. 숙성육은 만드는 사람에 의해 미묘하게 맛이 좌우되는 감각적인 고기다. 감각적이고 색다른 삼겹살 한 점에 특별한 이벤트를 곁들여보는 건 어떨까.
농후한 숙성의 맛보다 산뜻한 신선육의 맛을 선호하는 분들도 많다. 신선한 냉장 삼겹살을 고도의 집중력으로 맛있게 구워내면 입안 가득 육즙 파티를 경험할 수 있다.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산뜻하고, 촉촉하면서도 끝 맛이 가볍게 마무리되는 신선한 냉장 삼겹살은 누구나 좋아하는 그 삼겹살 맛을 표현한다.
세상에 같은 삼겹살은 없다. 원산지나 품종이 같아도 돼지가 어떤 환경에서 뭘 먹고 자랐는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삼겹살, 앞으로는 음미하면서 먹어보자. 칠레산 삼겹살을 구우면서 안데스 산맥의 시린 바람을 상상해보고, 이베리코 삼겹살을 먹으면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광활한 대초원을 떠올려본다면 오늘 저녁 삼겹살은 분명 특별해진다!
글_김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