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잠든 예술가를 깨워라
"꿈은 이루어진다"는
비현실적 낙관주의보다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비관적 현실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
개인의 능력과 열정만으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시스템의 경제적 한계. 부조리가 엄존하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차가운 현실적 통찰력이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더 큰 공감과 위로가 되고 더 많은 힘이 될 수도 있음을 그와 나눈 몇 마디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와의 첫맛남!!
5년이 지났지만 녹화장에서 그가 보여줬던 창의적 일탈의 단단함을 그대로 확인했다. 시스템의 기만과 집단주의가 몰아가는 광풍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건강한 개인주의"로 단단히 무장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음도...
남들과 다른 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는 것!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독립된 정신을 가지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의무나 도리.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감성 근육으로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기분 좋고 행복한지를 알아차리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단단한 내면을 구축하고. 비관적 현실주의를 직시할 때 가능한 것!
집단의 의견에 따르기보다 개인의 생각을 키워야 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개인의 생각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 세뇌가 거세질수록 거기에 저항하는 개인의 내면과 감성은 더 단단해지고 풍부해지는 걸 요즘 들어 부쩍 느낀다.
작용 vs 반작용의 법칙이랄까?
하지 마라면 더 동기 부여되는 심리도 있잖은가!?
청개구리 정신!!ㅎㅎ
그러니 생각지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권위와 폭력에 짓눌려 생각하지 못한다고 엄살떨며 변명하지 말자.
'까라면까지 웬 말이 많아?'라는 폭력적인 지시가 오히려 '내가 왜 내 생각을 말로 설명하면 안 되지?'란 생각 질문을 더 자극하게 되니 고마운 일이다.
당장 부딪히기 싫다면 말로 행동을 변명하지 말고
행동으로 말을 증명해 보이면 된다.
근거 없이 미래를 낙관하는 것이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는 데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여 합리적으로 비관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생각 근육을 더 단단히 키울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비관적 현실주의다. 하지만 비관적인 현실을 부정하기만 하면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무력감은 자괴감을 가져온다.
그래서 소수 지배권력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다룰 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과적인 통제 수법 중 하나가 저항력을 잠재우기 위해 무력감을 주는 것이다. 고문이 먹히는 지점이다. 무력감이 반복적으로 학습되어 습관이 되면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분열되는 자괴감도 익숙해진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자기 결정권을 포기한 대가로 주어지는 복종이 주는 안락함으로 자괴감을 위로한다.
모난 돌이 두려워할 건 정 세례가 아니라
정이 무서워 모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해봤자지.. 뭐... 그거 되겠어?"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당하는 노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미 게임 끝이다. 민주주의 랍시고 자기 결정할 자유와 선택할 권리를 손에 쥐어주고 새장 문을 활짝 열어줘도 새장 밖 세상은 그저 그림의 떡! 날아갈 수 없는 새처럼... 이젠 선거를 해도 소용없다!
99%의 대중이 1%의 한 줌도 되지 않는 무리에게 통제당하는 난공불락의 원리!!
바로 피지배층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마저 착취하게 되는 "자기 착취"의 원리다.
무력감과 자괴감에 길들여진 기성세대가 자기 착취구조 속에서 세뇌되고 복종하게 되면서 굳어진다. 학습된 무기력이다(Learned Helplessness). "가만있으라. 그럼 적어도 중간은 간다~"는 세뇌는 자기 착취가 자가면역질환에 까지 감염되어 나타난 자기 파괴적 멘토링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도 마찬가지...
기존 체제를 불편케 하고. 고정관념과 부딪히는 모난 돌은 정을 맞기 십상이다. 안 맞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모난 돌은 정 세례(?!)로 다듬어지고 성장한다. 자신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정 세례질"쯤은 변증법적 발전을 거쳐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건 모난 돌을 다듬는 정이 아니라, 정 맞을까 봐 모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바로 기득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향유하고 지탱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생각하지도 말고. 나서지도 말고.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살라는 것!! 시대와 세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모범답안이다.
그럼 언제까지 가만있어야 할까..?
가만히 있어서 우린 그동안 무엇을 얻었나?
집단 광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자!!
모난 돌이 두려워할 건 정 세례가 아니라 정이 무서워 모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