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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pr 13. 2022

조금은 능숙한 주부의 갈비찜

밥솥 오열 시절은 끝났어!



스물여섯 살의 여자는 예비 남편과 친정엄마와 함께 백화점 10층 가전제품 판매장으로 향했다. 왜 굳이 다 함께 갔는지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조합인 이 세 사람은 어쨌거나 그날 전기밥솥을 사기로 돼있었다. 10층엔 냉장고 같은 대형가전부터 도마나 실리콘 젓가락 같은 사소한 주방용품까지 많은 물건이 있었다. 세 사람은 항아리처럼 배가 통통한 밥솥 앞에 멈추어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점원은 뚜껑과 내솥을 일일이 보여주며 사용법과 특장점들을 열심히 설명했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각종 기능설명을 끝마친 점원이 마침내 고무 패킹과 물받이를 분리해 꺼내며 청소방법을 설명하던 그 순간. 스물여섯의 여자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당황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도 예비 남편도 그리고 청소법을 설명했을 뿐인 점원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왜 우냐는 그들의 질문에 여자는 “그냥. 됐어. 몰라.” 따위의 답을 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


  ‘밥솥 청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아니, 밥솥 관리가 아니라 밥도 잘 못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이건 잘하는 결혼일까?’


  결혼을 코앞에 두고 뒤엉킨 오만 생각들이 하필이면 백화점의 밥솥매장에서 터져버리다니. 그때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뒤로 10년을(물론 그 이상이 될 예정이다..) 그날의 밥솥 사건으로 두고두고 고통받게 될 줄. 여자의 남편은 주말에 가끔 밥을 안치며 밥솥 구석구석을 닦다가 그때 생각이 난다고 낄낄거린다. 모든 게 막연한 기분도 결국은 생각보다 괜찮아진다는 걸 여자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일주일에 한 번씩 놀림거리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이야기 속 스물여섯 살 여자인 나는 어느덧 서른일곱 살의 주부가 되었다. 그사이 대단한 주부 9단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왔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나 갈비찜을 할 땐 늘 양념장을 직접 만들어 고기를 재운다. 시판 양념을 사지 않는 건 나의 자부심...은 아니고, 갈비찜을 만드는 명절 때마다 양가 부모님께서 “갈비를 참 맛있게 하네" 하며 달콤한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에, 그리고 양념을 매번 직접 만들어서 요리하는 친정엄마를 어릴 적부터 봐와서 왠지 나도 그러면 좋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비교적 간단한 불고기에 비해 갈비찜은 조금 부담스럽다. 레시피를 보며 공을 들이자면 일이 아주 많다. 달달하고 잡내 없는 양념을 위해선 믹서기로 양파와 사과를 갈아야 한다. 잔뼈와 불순물이 없게 고기를 씻고 데치고, 양념이 잘 배도록 칼집도 내야 한다. 감자와 당근도 으스러지지 않게 테두리를 둥글게 다듬으면서 썰어준다. 명절이면 으레 치르는 어떤 의식처럼 남편과 나는 저 ‘갈비찜 과업’을 함께 수행해왔다. 내가 양념을 배합하는 동안 남편이 믹서기를 전담한다거나, 내가 채반을 들고 있으면 남편이 고기 데친 냄비를 통째로 들어서 붓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치 남편이 없으면 만들지 못할 음식인 것처럼, 아주 어려운 음식인 것처럼 매년 설과 추석, 부담 반 정성 반으로 갈비찜을 만들었다.

    

  지난 2월,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오지 못한 설날. 남편과 아이들에게 꼬지 재료를 잔뜩 내어주고 나는 ‘혼자’ 주방에 서서 갈비찜을 준비했다. 그것도 나름 ‘척척’. 이상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양파 툭툭 썰어 위잉 갈고, 사과는 애석하게도 없으니 사과즙 한 포 뜯어 넣으면 되고. 으깨진 감자가 떠다니는 건 싫으니 그냥 빼고, 당근은 아무도 안 좋아하니 빼고. 표고버섯은 없으니 꼬지 재료에 있는 느타리버섯을 한 줌 넣어야겠다! 탄탄한 집게, 큰 양푼, 혼자 설 수 있는 다리 달린 넓은 채반이 있으니 고기를 데치고 옮기고 양념에 재어놓는 것도 꽤 할만했다. 갈비찜의 어려움은 사실 번거로움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나마의 번거로움도 재량껏 조절할 줄 알게 되다니, 어쩐지 조금은 능숙한 주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놀던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서 보면 무척 좁게 느껴지는 이유가, 어른과 아이의 공간 감각 차이 때문이라고 하던데. 주부 11년 차인 나와 밥솥 앞에서 울던 스물여섯의 나, 둘의 내적 감각에도 어떤 차이가 생긴 걸까? 결국 경험과 반복이라는 걸 안다. 그동안 반찬을 자주 하지 않았다거나 직장생활에 더 치중해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무게중심을 이쪽에 두고 살았다는 게 드러나긴 하는구나. 보고 듣고 해 보고 그간 쌓인 주부의 시간이 마냥 공허한 시간은 아니었구나. 가보지 않은 길이 밥솥 하나에 다 달린 것처럼 겁먹었던 내가, 10년이 지나고는 능숙함의 언저리에 발이라도 걸친 것 같아 새삼스러웠다. 밥솥 오열 시절은 정말로 끝이 났다.  

  

  완성된 갈비찜 위로 둥둥 뜬 기름을 국자로 살살 걷어냈다. 갈비찜을 할 때마다 기름을 꼭 걷어내라고, 잘 안되면 바깥에 내놓고 굳힌 다음에 건져내라고 친정엄마가 말할 때마다 '거 대충 먹읍시다' 하며 말을 안 듣던 내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섬세하게 한 숟가락씩 기름을 떠내고 있다. 감자, 당근은 취향대로 안 넣어도 괜찮다고, 기름은 좀 없애는 게 낫겠다고, 거를 건 거르고 취할 건 취할 줄 아는 유연한 주부가 되어감을 갈비찜에서 느낀다. 또 모. 김치는 정말 못 담글 것 같다고 하지만 50을 바라보는 주부가 되면 나름 괜찮게 해내고 있을지도!



당근 빼고 감자 빼고 진행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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