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몇몇만 겨우 알고 사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만은 좋다. 요즘은 걸그룹 무대 영상을 자주 찾아보고 노래를 골라 듣는다. 희한하게 나이 들면서 더 좋다. 무대 위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인 것처럼 끼를 내뿜고, 온갖 예쁜 척 멋진 척(실제로 예쁘고 멋지지) 카메라를 뚫어져라 보며 주체하지 못하는 그 흥, 그런 게 어쩜 이리 보기가 좋은지.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이라 그런가? 어떨 땐 애기들이 저렇게 격한 춤춰서 어쩌나, 허리랑 목이랑 다 괜찮나 할머니 같은 걱정을 하면서, 근데 감탄은 감탄대로 하면서, 이제는 진짜 딸 아들 나이의 그 아이들 무대를 본다.
물론 아이돌의 팬이기도 해 봤다. 어릴 때야 그저 단순히 1세대 아이돌 소녀팬의 마음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훌쩍 세월이 흘러 어떤 아이돌을 응원하게 됐을 땐 마음이 좀 달랐다. 얘네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치열하게 살았구나(라고 말하는 건, 내가 늦게 빠진 얘네들 역시 좀 이전 세대 정점을 찍은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이 많았구나, 버텨낸 거구나 하는 존경 비슷한 마음들. 꼭 이 그룹이 아니더라도 계속 나오는 어린 아이돌들을 보면서 쟤네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 아이 셋을 키우게 되고 첫째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이 한 스푼 들어간 것이다. 저 애기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데뷔했을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의 괴로움을, 잘 되면 잘 되는 대로의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까. 물론 고생 없는 일, 괴롭지 않은 일, 외롭지 않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
언제부터인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잘 안 봤다. 출연자들이 이미 프로거나 직업인이거나, 어느 정도 나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면 그나마 좀 나았다(나이와 경험이 있다 해도 탈락은 여전히 싫은 시청자였지만).내가 유독 보지 못한 프로그램은 아이돌 선발 서바이벌이다. 그 핫했던 프로듀스 시리즈도, 방과후 설렘 시리즈도, 이것저것 영상이 많이 뜨고 유명한 이름들이 사람들 대화에 오고 갔지만 그냥 계속 관심을 두지 않았다. 떨어지는 어린 아이들 보는 게 싫어서였다. 정작 본인들은 씩씩하게 미래를 다짐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나가는 유리멘탈 시청자1은 그랬다. 저렇게 어린 애들이 저렇게나 간절한데(인원은 좀 많아?) 급수를 나누는 것도(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보고 싶지 않았고, 잘하는 애들 중에 더 잘하는 애를 뽑아 탈락시켜야 하는 것 등 모든 걸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인기 있는 TV프로그램도 스스로 선을 그었는데 어제처럼 어떤 아이돌의 비보가 들려오는 날이면 정말... 그의 팬도 아닌데 안타까움이 말로 다 할수가 없다. 어떤 아이돌의 죽음 앞에선 사실 분노가 더 큰 경우도 있었다(특정 이슈로 심하게 당한 공격,원인을 제공한 가해자 때문에 생을 마감한 경우가 그랬다). 근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간 이의 소식을 들을 때면 정체모를 슬픔이 더 크다.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팬들의 마음이 되고 부모의 마음이 된다.(팬들의 황망한 마음은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부모의 마음은 감히 가늠되지 않는다)
아이돌의 팬들은 자기 아티스트에게 정말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말, 축복의 말을 끌어와, 전부를 쏟아붓는다. 정말 자식을 대하듯이. 아니, 자식에게 못하는 말까지도. 잘 되길, 훨훨 날길, 예쁘다, 멋지다, 하루의 안녕부터 인생의 꽃길까지그렇게 빌고 빌어준다. SNS나 유료 메시지 서비스를 통해 마음을 전하기도 전보다 수월해졌다. 그 수많은 말들과 사랑을 뒤로할 만큼의 혼란함. 그걸 끌어안고 마감한 20대 청춘의 생.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닌, 나처럼 나이 든 아줌마도 아는 성공한 그룹 멤버여서 더. 사랑받고 다 이루었으면서 대체 왜!가 아니라, 대체 산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최애 역시 힘듦을 토로하고 싶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다 힘들고 아프고 하지만 열심히 사는 거처럼, 자기는 춤추니까 당연히 몸 아프고 다치고 힘든 건데 이걸 힘들다고 투정 부리면 절대 안 되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룹으로의 성공을 거두고도 혼자만의 진로와 음악을 앞에 두곤 큰 슬럼프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좋은 어른을 만나 그 때를 잘 넘겼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찾아오는 이런 생각, 음악에 대한 삶에 대한 고민, 그 시기를 어린 아이돌들이 좋은 버팀목과 함께 무사하고 안전히 넘겼으면 좋겠다.
요즘 애들은 나약하네 어쩌네, 그렇게 사랑받으면서 왜 가족과 팬을 뒤로했냐고 왜 못 견뎠냐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돌을 떠나서, 누군가의 마음과 우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돌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아이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아이돌과 팬들이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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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지만 나도 내 마음을, 하고 싶은 말을, 어디 정리해두지 않으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