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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Dec 19. 2023

닮아서, 사랑하고 버거운 사람들

닮은 사람들에 대한 고찰



1. 둘째


나는 둘째가 자주 버겁다. 그래서 장난 반 진심 반(정말 '반반'이 맞는가, 20:80은 아닌가..에 대한 건 독자의 판단에 맡김)으로 남편한테 자주 말한다.


"오빠가 얘 전담공무원 해."

"두 분 황소고집인 거 똑 닮았으니까 두 분 언제나 같이 행복하쇼..."

"우리 소울메이트들, 행쇼..."


둘째는 중간이 없다. 때론 놀랄 정도로 감동적이고, 때론 아주... 아주... 정말 더이상은... (생략한다)

그래서 이 아이와 난 종종 지독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지독한 말과 나쁜 눈빛을 종종 내뱉는다.



얼마 전, 코바늘로 뜨는 미니 트리에 꽂혀버렸다.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유튜브를 보고 또 보면서 한 개를 완성했는데 이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예쁜 거다.

열심히 뜨고 있던 블랭킷을 그 길로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곤 트리만 색깔별로 네 개를 떴다. 다음 날은 이 색 저 색 조합하면서 이것만 두 개를 또 떴다. 손이 네 개 이거나 어깨가 더 멀쩡했다면 무조건 몇 개 더 떴을 거다.


트리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둘째를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색종이 하트팔찌에 꽂힌 둘째. 하루.. 이틀.. 계속 접고 있던 미니카는 내던져버리고 색색이 다른 조합으로 40개의 하트팔찌를 접어 가족들에게 300원에 팔던 나의 둘째.



설마......?





2. 아빠


아빠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친하지도 않다. 외동딸이지만 아빠에게 살가웠던 적은 없다.(물론 쌍방이다...)


애초부터 싹싹한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청소년기 즈음부터는 아빠랑 점점 길게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말하면 부딪혔다.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인 말투가 싫었다. 내 얘기가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줄었다.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아빠와, 매사 천년만년에 계획 따윈 개나 준 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질려했다. 여행을 가면 반드시 밖을 돌아다니고 액티비티를 해야 하는 아빠와, 숙소쳐돌이인 딸은 자주 "안 맞아 안 맞아.."를 되뇌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아빠가 퇴직하신 지 6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푸념이 늘었다.


아니, 때마다 밥 차리는 건 둘째 치고, 아빠가 평일엔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간다는 거였다. 어쩌다 산에라도 한 번 가는 날엔 꼭 엄말 데려간다고. 종일 아빠랑 한 공간에 있는 게 답답해서 엄마가 어디 나가려 하는 날엔, 어디 가냐 누구 만나냐 언제 오냐 꼬치꼬치 캐물어서 아주 죽겠다고 했다.


"당신도 친구를 좀 사귀어 놨으면 얼마나 좋아? 직장동료나, 교회 사람들이나... 박서방이 당신 가라고 무료 테니스 코트도 알아보고 하던데 그런데라도 좀 나가지!"


엄마가 이리 말했더니 아빠가 했다는 대답이 날 너무 소름 돋게 했다...


"난 친구 없는 거 하나~~~도 안 아쉽다. 집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뭐지. 재방송인가.

며칠 전에 남편이 나한테, 낯선 데로 이사 와서 친구도 하나 없는 네가 너무 걱정되고 짠하다 했을 때 나는 말했다.


"난 친구 없는 거 하나~~~도 안 아쉽다. 집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혹시......??




3. 닮은 사람들


혹시, 설마, 라고 썼지만 아마 다 거짓말일 거다.


둘째가 남편 고집을 닮았다고, 저거 박씨 아들 맞다고 아주 학을 떼면서도 사실 난 이 아이가 날 더 닮았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거. 슬리퍼 끄는 사소한  느낌을 좋아하는 거.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좋아하는 거. 일기쓰기 편지쓰기가 어렵지 않은 거. 쉽게 상처받고 감탄하는 거. 중간이 없는 거....


우린 사소하게 많이 닮았다.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빠랑 다르다고 왜 날 자꾸 아빠랑 똑같다고 하냐면서 엄마한테 자주 바락바락 짜증을 냈지만, 나는 사실 아빠를 너무 닮았다는 걸 이미 너무 알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그저 아빠는 대문자 J, 나는 대문자 P 일뿐. 행동하는 스타일이 달랐을 뿐. 그뿐이다.

사람들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거. 사교성 없는 거. 욱하는 승질. 전반적인 사고의 흐름. 한 번 빠진 취미에 각종 도구를 잔뜩 사들이는 거(엄마는 질색팔색함). 집에서 혼자 할 일이 참 많은 아빠와 나.



비슷해서 더 어려운 사람들.

성격차로 헤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같은 극을 자석처럼 밀어내다 서로가 어려워지는 사람도 있나 보다.


트리를 만들다가,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탁, '그런 부분마저도' 우리가 같은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정말 육성으로 '히익!' 소리를 내고 말았다. 확인사살 같은 것, 쐐기를 박는 느낌!



나는 영락없이 아빠였네.

둘째는 정말로 나네.



코로나가 기승일 때 콘서트가겠다 한 나를 엄마는 말리고 싶어 했지만, 안전에 민감한 아빠가 '좋아하는 건 보고 와야 하지 않겠냐'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아주 뜻밖에도, 어쩌면 이 사람들이 티는 잘 안 내도 속으로는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 주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나 역시 이 사람들을 가장 버거워하면서도 이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애잔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닮은 둘째, 닮은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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