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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y 26. 2023

조금 더 칭찬하고 감탄하며 키우는 엄마

쉽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승의 날이라고 집에서 손재주를 좀 발휘했다. 카네이션 수세미도 뜨고, 꽃볼펜도 만들고. 예쁘게 사진 찍어 엄마한테도 톡으로 보냈다.

엄마가 말했다.


우리딸 잘하는 게 많네!



나참. 나이 마흔이 코앞인데도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 우리 부모님은 칭찬보단 지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며칠 전에 라디오 사연 보낸 거 당첨됐다는 자랑도 했어서 아마 엄마가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넘치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면 나는 좀 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심지어는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별로 대단하지 못한 직장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그냥 감탄과 지지의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엄마 아빠를 원망하는 건 아니다. 이제는 너무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므로.)






아이들을 많이 더 많이, 칭찬하며 키우고 싶다. 뭐 대단한 칭찬이라고, 아이를 칭찬하려 할 때마다 자꾸 뭔가 가로막는다. 물론 그런 뛰어난 리액션, 간지러운 말들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주춤하게 하는 건 칭찬에 대한 다양한 말들과 교육 지침들이다.


'칭찬을 고래 춤추게 한다'는 시절이 있었지만(여전히 유효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지나친 칭찬은 독이 된다'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과정을 칭찬하지 않고 결과를 칭찬하면 아이는 결과만 중시하게 된다.
부모는 평가자가 아닌데 '잘한다 잘한다' 그런 건 평가자의 말일뿐이다.
지나친 칭찬은 아이를 자만하게 만든다.
최고 짱짱 같은 말들은
의미 없는 칭찬이다,


같은 들 말이다.



5학년 첫째가 학교 단원평가, 쪽지시험에 100점을 받았다고 들떠서 말할 때마다 나는 화려하게 반응해주지 못한다. 그저 "잘했네." "축하해." 건조하게 말할 뿐이다.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있다


이거 되게 기본적인 문제인데.

중간 기말고사도 아니고 너무 쉬운 쪽지시험, 단어시험 정도인데.

고개를 돌리면 영어책을 줄줄 읽는 애들이 넘쳐나는데, 이 기초단어 시험 100점으로 내가 애 비행기를 태워주는 게 맞나?

연산 풀 줄 안다고 자기가 진짜 수학 천재인 줄 알고 있으면 어떡하지? 응용문제 한번 안 풀어봤으면서?

자만해지진 않을까?

결과만 보고 잘한다봇이 되어도 되는 걸까?

이러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닐까?

거기에, 이 쉬운 문제 정도는 당연히 100점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한 스푼, 얘는 늘 잘하니까...라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 한 스푼도 알게 모르게 더해졌을 거다.(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우리집엔 그 되게 되게 쉬운 것도 30점 받아오는 아이도 함께 지내고 있으므로)



결론적으로, 어리석다. 대체 뭘 그렇게 혼자 재고 따지는 걸까? 그시간에 감탄의 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는 편이 나을 거 같다.(물론 이건 내 뇌피셜이다... 위에 쓴 칭찬에 대한 각종 우려들은 책피셜이고.) 어차피 어떻게 해야 100프로 이렇게 잘 자란다!고 미래를 점칠 사람은 전문가 중에도 없을 것 아닌가...

뭐가 그렇게 무섭고 걱정된다고. 내 아이가 칭찬을 원하는데. 100점 쪽지시험지를 앞에 두고 "학교 문제 음~청 쉽네!" 실언했던 적도 있는데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모질이 천치인지!



어차피 잔소리 듣고 혼나고 지적받는 일상일 텐데. 조금이라도 잘한 일에, 스스로 뿌듯할만한 일에(학업이 아니더라도) "잘했어." "훌륭하다!" "멋지다!" 같은 말 보태는 게 뭐가 어떻겠나.(물론 매사 남발하겠다는 건 아니고)

작은 일에도, 부족한 일에도 쉽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홍김동전'의 김숙처럼. 멤버들이 뭐 할 때마다, 멋지다 잘한다 대단하다 감탄을 마지않는 그녀처럼.)

너무 반복 같더라도 칭찬을 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지구오락실'의 이은지처럼! 비록 타성에 젖은 음식맛 찬사일지라도 ㅋㅋㅋ)

이 말들로 아이를 망치진 않을 것 같다.



칭찬 먹고 커라 내 아가들


무미건조보다, 시큰둥보다, 옳은 소리보다, "완전 짱이야" "대박" 오바육바하는 편이 낫다. 잘한다 잘한다 듣고 자라도 알아서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시기가 올 텐데 나까지 벌써 거들 필요 있나? 그 시기가 오면 이때 들었던 '잘한다' 노래가 위로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줄지 누가 알.


사랑만 하며 살기도 짧은 인생이라고 하지 않나. 칭찬하고 감탄만 하며 살기도 모자라다. 마음껏 비행기 태워주는 내공을 갖고 싶다. 어제, 수학시험 100점 맞았다고 두어 번 흘려가며 얘기한 아이의 말에 신나게 반응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시험 잘보면 이거 사줄게 저거 사줄게 하는 방식은 싫어하지만, 거리낌 없는 칭찬엔 힘을 내야겠다. 잘했을 때뿐 아니라 영 만족스럽지 않을 때에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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