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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Feb 08. 2019

아내가 쓰는 신혼집 보수일지 - 타일

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신혼집을 공사한지 이제 거의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 때 한창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벌써 1년이 되었다니.


대학교 시절 꽤나 집순이었던 내가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주말에 가만히 집에 있으려면 뭔가 답답한 밖순이가 될뻔 했었다. 하지만 결혼 1년차, 나는 다시 집순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해가 지날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탓도 있겠지만 집이 예쁜 탓도 있겠다. 너무 자화자찬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후회없이 집을 수리하고 나니 집에서 커피 한잔 하며 고구마를 까먹는 것이 이 추운 날 여느 카페를 가는 것보다 행복하고 여유롭다.


1년 동안 신혼집을 조금씩 손봤다. 베란다에 마구잡이로 늘어놨던 잡동사니들을 질서정연하게 놓을 선반도 만들었고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다시했고 스위치도 교체했고 타일도 손봤다. 그 중 가장 최근에 작업했던 타일 보수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우리 집은 꽤 건조한 편이다. 도비는 단열을 너무나 철저하게 한 탓이라고 한다. 덕분에 올 여름도 그리 습하다는 느낌없이 잘 넘긴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건조하다보니 도비의 코가 남아나질 않고 (그래서 결국 침실엔 가습기를 들였다.) 그래서인지 거실 타일 중 1개가 들뜨고 말았다. 사실 건조해서 그런거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시공 시 타일 밑의 바닥면이 균일하게 평면을 이루지 않았다면 타일 접착 또한 균일하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타일을 밟을때마다 딱! 딱!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들뜨면서 근처의 매지도 점점 갈라졌다.


매지 긁어내는 중


확실한 방법은 (아마도 타일 시공 아저씨가 추천해주실 방법) 문제의 타일을 깨내고 새로운 타일을 붙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간 자칫 주변의 타일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여분 타일이 1개 있긴 했지만 타일을 깬다고 해도 그 아래 바닥면이 어떤식으로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끼리 보수해본다고 나섰다가 결국은 큰 돈을 들여 전문가를 부르게 되는 불상사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도비가 제안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보수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문제의 타일 주변의 매지를 최대한 깔끔하게 긁어내고 그 틈으로 록타이트401 (순간접착제) 을 흘려보낸 후 굳히는 방법이었다. 타일을 최대한 들어올려 접착제를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한쪽 모서리부분은 잘 붙어있는지 전체를 들어올리기는 쉽지 않았고 위험부담이 있었다. 주사기를 이용해 접착제를 타일 사이로 흘려보냈고 잘 접착될 수 있도록 그 위에 무거운 잡동사니들을 올려놓고 하루를 보냈다.


매지를 파내는 일, 그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매지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이왕 매지를 건드린 김에 다른 타일 부분에 떨어져나간 매지도 함께 보수하기로 했다. 최대한 깔끔히, 끝까지 파내야 매지가 다시 떨어져나갈 확률이 적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타일이 끝나는 부분까지 파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청소할땐 슬슬 잘 떨어져나가던 애들이 왜 파내려고 하니 잘 안 떨어지는건지.


흩날리는 매지가루를 정리하는동안 도비는 백시멘트(홈멘트)와 라텍스 장갑, 바가지를 사왔다. 우선 도비가 시범으로 물에 개어 밀가루 반죽처럼 만든 홈멘트를 비어있는 타일과 타일 사이에 꼼꼼히 밀어넣었다.


깊숙하게 아래로 밀어넣는단 느낌으로 작업하는 것이 포인트!


매지를 잘 채워넣었으면 울퉁불퉁하게 채워진 매지를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매지부분을 쭉 훑어서 매끄럽게 만들어도 되고 물수건등으로 다시 패이지 않게 주의하면서 닦아내도 된다.


깔끔히 닦아내는 일은 나의 몫.


나중에 매지 보수를 하면 꼭 채워넣어야지 다짐했던 부분들도 모두 보수를 진행했다.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지만 왜인지 아무생각 없이 집중을 요하는 이 일이 꽤 재밌었다. 도비가 "아주머니, 오늘 처음이신데 일 잘하시네요!" 라고 농담을 던졌다. 칭찬에 으쓱해진 나는 "제2의 직업으로 매지 기술자 할까?" 라는 다소 건방진 발언까지 던졌다.


매지 채우기 전 (최대한 매지를 긁어낸 상태, 타일이 떠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매지 채운 후


어느 날 갑자기 또 예전처럼 딱! 딱! 소리가 나며 타일이 뜰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성공적인 보수였다. 새하얗게 채워진 새로운 매지를 보며 신혼집에 처음 입성했을 때가 떠올랐다. 원래 이렇게 하얗고 꽉 차 있었나 싶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새집 티를 갓 벗었다가 다시 조금 새 집인척 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매지 보수하는 법은 완벽하게 알았으니 또 할 수 있는데 타일은 더 이상 들뜨지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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