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이었다. 그 사건은 미국 조지아주 로렌스빌의 어느 한적한 외곽 마을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하늘은 남색 빛이었다. 희끄무레한 가로등불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있었다.
초입부터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주택들이 이어졌다. 그 길의 끄트머리쯤 50년은 족히 자란 듯한 우람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병풍처럼 한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집이었다.
이 목사 가족
다가가보니 간간이 소독약 냄새가 났다. 바닥엔 파란 1회용 니트릴 장갑이 나뒹굴고 있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지상 2층 규모의 흔한 미국식 주택이었다. 지대가 낮은 쪽으로 접근하면 차고 입구가 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1층 입구가 있었다.
죽은 사람은 차고에 오래 감금되어 있었다고 했다. 차고는 꽤 넓은 편이어서 그 안에는 창고, 방 한 개, 작은 예배당이 있었고 가족들은 그 위의 지상층에서 생활했다.
집의 주인은 이 목사 부부였다. 아들 삼형제도 같이 살았다. 첫째 이민우(이하 가명)와 둘째 이민준은 20대 초중반의 청년이었고 막내 이민재는 중학생이었다.
그 집엔 가족 말고도 거주자들이 더 있었다. 이민우의 친구인 한국인 남성 케빈, 이민우의 여자친구 이다영, 그리고 삼형제의 사촌 이승민이 같이 지내고 있었다.
이 목사 가족이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2021년이다. 그 이후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제주 사우나
미국 조지아주의 제주 사우나.
웬만한 체육관 크기의 대형 한국식 찜질방에는 평소 라틴계, 흑인, 아시아인등 다양한 인종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이십 년간 이곳에서 지배인으로 일해온 한국인 여성 김씨는 자정을 앞두고 점검차 업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2023년 9월 12일, 밤 11시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주차장에 경찰차가 잔뜩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놀란 김씨는 주차장으로 뛰어 나갔다. 밤이 깊어 손님이 빠져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은색 재규어 차량, 그 앞에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김 씨는 차량 가까이로 다가갔다.
웅성이는 사람들 틈으로 트렁크 안이 살짝 보였다. 붉은 모포에 뒤덮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혹시나 손님이 얽혀있거나 영업에 문제가 생길까봐 식은땀이 났다. 궁금했던 중에 경찰이 김씨를 찾았다. 경찰은 몇 가지를 물어보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줬다.
붉은 모포에 덮여있는 것은 여성의 시신이다. 부패가 약간 진행된 상태다. 신고가 들어와서 인지하고 출동했다. 신고자는 차량 운전자의 가족이다. 차량 운전자는 오늘 오전 여기에 차를 두고 갔다. 차량 운전자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우리 팀 중 일부가 거기로 출동했다…
출동한 경찰도 그 이상은 모르는 것 같았다.
6인의 범인
다음날 이른 아침 로렌스빌, 중국계 미국인 폴은 여느 날처럼 2층 침실에서 잠을 깬 뒤 창문을 열었다. 늘 시원한 바람과 함께 창틈으로 쏟아지던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체 같은 정적이 집 앞 거리를 채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창문을 내다보았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검은 벤들이 여러 대 서있었다. 폴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창가에 빗겨 서서 바깥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5분이나 지났을까. 건너편 이씨 가족의 집 차고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왔다.
그때였다.
차 안에 있던 제복 차림의 사람들 수십 명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일부는 청년에게 총을 겨눴고, 나머지는 집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군사 작전 같은 진격이었다.
잠시 후 이 씨 삼형제와 이승민, 이다영이 체포되어 나왔다. 이 목사 부부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
이런 일들이 있고 난 직후, 수많은 미국 언론이 ‘한인 살인사건’을 보도했다. 사건의 개요는 기묘했다. 이씨 형제와 이승민, 이다영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들(Soldiers of Christ)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시신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피해자 김지현(가명)씨는 30대 초반의 여성인데 시신 발견 당시 몸무게가 31~32kg에 불과했다. 검시관은 시신의 상태를 고려해 사인을 영양실조와 폭행으로 추정했다.
사건이 알려지고 관심이 쏠리자 미국 언론들이 이씨 부부의 집 앞에 출동했다.
이웃 랜디 씨는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밤, 피의자들이 거리 한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머리를 맞대고 뭔가 주문 같은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웃들은 그 한국인 가족이 자신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으며, 가끔 거리에서 군사 훈련 같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한 조지아 교민이 이런 소식들을 그알 팀에게 알려주었다.
사이비 종교와 인간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이 있던 나는 사건의 개요를 듣고 즉시 미국행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피의자들이 스스로를 조직으로 칭했고 피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그리스도의 군사들’에 이씨 일당 외에 조직원이 있고 한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면, 국내에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때마침 토요일이어서 우리 방송 말미에 ‘그리스도의 군사들’에 관한 제보를 내고, 한편으로는 조연출과 함께 바삐 출국을 준비했다.
그러고 있는데 일요일 새벽 1시경, 놀랍게도 이다영(이민우의 여자친구, 피의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해보니 엄청 흥분한 목소리였다. 늦은 새벽 통화를 하며 나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잡혀가지 않은 이씨 부부에게 더 큰 문제가 있으며, 지금 살인 혐의로 잡혀간 다영이도 그 집안사람들로 인한 피해자라는 얘기였다. 궁금증이 더 커졌다. 이다영 어머님도 나와 같은 날 미국 입국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조지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계시
긴 비행이었다.
시카고를 거쳐 20시간을 날아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해외 출장을 가면 하루하루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이씨 가족의 주변 사람들을 훑고 다녔다. 한국에서도 별도의 취재팀이 움직이며 이씨 가족의 한국 연고지를 조사했다.
이씨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심지어 미국 이민을 결정한 것도 엄마 이씨가 “미국에 가라는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아서”라고 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이 목사는 미국에 와서는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었고, 한편으로는 한인 교회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얼마 후에는 그 한인 교회가 운영하는 노인 케어 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해 부부가 함께 취업했다. 삼 형제가 성장한 뒤에는 형제도 그곳에서 일했고 첫째 이민우의 친구인 케빈도 이곳에 합류했다.
교회와 노인 센터 사람들 모두가 이씨 가족과 케빈을 알았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 그들을 돌봐준 목사 모두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은
“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내 느낌에 주변 사람들이 뭔가를 감추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씨 가족과 가까이 지낸 어느 목사는, 인종 차별하는 미국 경찰이 수사도 정확히 안 하고는 아이들을 마치 살인 갱단처럼 떠벌려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은 중범죄로 인정되면 즉시 모든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다. 잡혀간 6명은 살인에 더해 조직범죄(Gang) 혐의까지 더해져서 심각한 중범죄로 몰려있었다. 내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중학생인 막내를 제외한 이씨 삼 형제와 이승민, 이다영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어 있었다.
이미 피의자들의 신상까지 공개한 경찰, 그리고 그 6명을 두둔하는 주변인들 중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아리송했다.
게다가 한인회를 통해 어렵게 연줄을 대서 만난 지역 검사장은 나의 모든 질문에 ‘노 코멘트’라고 답변했다. 언론에 호의적인 미국 경찰은 웬일인지 인터뷰뿐 아니라 우리와의 모든 만남을 거부했다.
가동할 수 있는 아무런 라인도 없는 미국에서 혼자서 막막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줄 것 같았던 이다영의 어머니는 막상 미국에 오니 연락을 받지 않았다. 수십 차례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영문인지 답답한 노릇이었다.
현지 한인 기자들과 한인회 분들이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다들 새롭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으니 둘러앉아서 막막한 마음만 나눌 뿐이었다.
눈 앞에 실체가 있는데 손을 뻗어보면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느낌. 소득 없이 속 타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하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이씨 가족의 집 문에 끼워두었다. 사건 초기 미국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들기 전, 이씨 부부는 이미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 집 앞에 밤새 해뜰 때까지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다. 작은 불빛조차 안 보이는 걸로 봐서는 정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편지를 남긴 것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 이 목사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② 순결한 해석에서 계속)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