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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20. 2024

그리스도의 군사들 ② 순결한 해석



(그리스도의 군사들 ① 미국 계시에서 이어집니다)


이 목사는 내게 편지를 잘 읽었다고 연락을 해왔지만 만남은 주저했다.


나는 정말로 이 씨 가족과 지현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반드시 이 목사를 만나야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듣겠다고 설득했다. 억울한 점이 있다면 한국 언론의 보도가 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긴 이야기 끝에, 그는 결국 만남에 응했다.


그는 로렌스빌에서 차로 30분여 떨어진 어느 조용한 변두리 지역에 은거해있었다. 우리는 그 근처의 작은 교회당에서 만났다.



그는 그알 팀이 미국에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다고 했다. 곧 집을 찾아오겠구나 싶어서 숨었다고.. 오늘 만남에도 아내는 반대했으나 자신이 답답한 점이 많아서 나왔다고 했다.


차근차근 모든 것을 들어야 했다.


이 목사는 자신의 아들들은 지현씨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모든 것은 케빈(첫째 아들 이민우의 친구)이 알고 있을 건데, 검거 이후 케빈 측 부모나 변호사가 연락을 완전히 차단했기에 자신들도 어리둥절하다는 것이었다.


집에 경찰이 쳐들어온 9월 13일 아침에 이르기까지 이 목사가 말해준 과정은 이렇다. 10여 년 전 지현씨의 가족과 이 목사 가족의 만남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연의 시작


죽은 지현씨와 엄마 윤 권사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윤 권사는 2000년대 초반 서울 강서구에서 기도원을 운영했다. 이 씨 가족과 윤 권사, 지현씨는 그 기도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로 가족 간에 오랜 교류가 있었고, 이씨 가족이 미국에 건너온 후에는 윤 권사가 기도도 많이 해주고 직접 미국 집에도 왔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윤 권사가 말하길 요즘 딸과 사이가 안 좋다고, 지현이한테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는다고 고민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의논 끝에 이 씨 가족이 그들 모녀를 불렀다고 한다. 머리도 식힐 겸 쉬었다 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2023년 7월, 윤 권사와 지현씨가 미국에 들어왔다.


이 씨 가족의 집에서 같이 지낸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윤 권사는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현씨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힘든 기억 때문에 당장 돌아가기는 싫고, 조용하고 새로운 이곳에서 좀 더 기도를 올리고 싶어 했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하고 엄마는 한국으로 갔다. 지현씨는 남아서 금식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의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자락까지 나아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겸손한 종이 되겠나이다..."


그즈음 이 목사가 듣기로는 지현씨가 미국에 남아 선교사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생을 바치는 선교를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씨 형제들은 그런 지현씨에게 자신들이 해오던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잠깐만, 훈련이라고요?”

“네, 그리스도의 군사… 훈련이죠.”


미국 언론 기사에서 보았던 이들 6명의 조직명,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단어를 사건 당사자의 입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이 목사는 성경책을 펼쳐서 나에게 디모데후서를 짚어 보여주었다.


“자, 여기 디모데후서 2장 3절에 이런 말이 나와요.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의 병사, 솔저스 오브 크리스트잖아요. 이게 무슨 특이한 집단 이름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거라구요. 


큰 애가 원래 성경을 원칙적으로 해석하는 앤데, 그런 의미에서 동생들한테도 신앙심 강화 훈련, 군사 훈련 비슷한 걸 시키기도 했어요. 그게 훈련 일지도 다 있단 말예요. 이상한 걸 했으면 그걸 다 적어뒀겠어요? 


그거 보면 복명복창하고 소리 작으면 동네 200미터 뛰어갔다 오고 그런 흔한 내용이에요. 근데 경찰이 그걸 무슨 조직명으로 잘못 알아듣고 애들한테 갱단 혐의를 씌운 거예요.”



순수한 해석


돌이켜보면 이 부분이 아주 중요했다.


성경을 구절 그대로 순수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완고한 신앙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이 제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죄악이 싹트게 되었다는 믿음이다.


이씨 형제들에게 그런 원리주의적인 경향이 있다는 말을 교회 사람들에게도 들었던 터였다. 뒤이어 이 목사는 형제가 지침으로 삼았다는 고린도후서의 구절을 읽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청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구절을 듣는데 정신이 잠시 어찔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모든 것을 구절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신앙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매맞음과 갇힘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까지도 실제로 해내야만 ‘하나님의 일꾼’이 될 자격이 있다고 믿었을까?


나는 지현씨 몸의 폭행 흔적이 왜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 목사에게 물었다.


“그건… 훈련 흔적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현이가 힘든 상황이었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버리고 새 삶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거고 고난을 자처하는 건데.. 무슬림 같은 쪽 가서 선교하면 어떻겠어요? 죽을 수도 있고… 그래서 스스로 금식이나 체력 훈련을 자청했다고 들었어요. 


근데 지현이가 워낙 몸이 약하니까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한 거는 제가 똑똑히 기억해요. 죽 갖다 주니까 맛없어서 안 먹겠다고 그랬다고… 근데 훈련 그만두고 나서 우리 애들은 모른다는 거야. 케빈 혼자 지하층 지현이 방에 왔다갔다 하면서 케어한 거예요.”



케빈의 비밀


이 목사의 말에 따르면, 이씨 형제의 ‘그리스도의 군사 훈련’은 지현씨가 자청해서 받아들인 일이었다. 


하지만 버티지 못하자 스스로 그만두었고, 이후에는 케빈이 쇠약해진 지현씨를 전적으로 케어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지현씨가 금식을 이어가다 어느 날 급사했고, 케빈이 아침에 와서 이를 발견한 뒤, 고민 끝에 차 트렁크에 싣고 나간 것이 아닐까 싶다고... 


이 목사는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케빈은 자신들에게 전혀 지현씨의 상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9월 12일에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11일이 우리 큰애 생일이었어요. 애들이 요리 솜씨가 좋아서 가족들이랑 다영이랑 다 같이 둘러앉아서 밥도 먹었단 말이에요. 근데 11일이면 지현이가 이미 죽어있던 날이잖아요? 만약에 우리 애들이 그걸 알았으면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밥 먹을 수 있어요? 지하에 시체가 있는데?”



이 목사는 노인 센터 일 때문에 보통 새벽 5시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잡혀간 이후 이 목사는 아내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나는 못 봤을 수도 있는데 정말 당신도 아무것도 모르냐고.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확하게, 여러 차례 이 목사에게 말했다.


결국 이 목사도, 아내도, 삼 형제도 죽은 지현씨의 마지막 며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이 목사의 손 끝은 케빈을 가리켰다.


나는 사람들이 진실한 표정으로 꽤 많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무엇이 거짓이고 어느 만큼만 진실인지 밝히는 것이 직업인으로서 내 역할이었다. 


일단은 이 목사가 주장하는 논리의 끝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지현씨 죽음의 키는 케빈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케빈의 비밀을 알아내야 했다.



(③편으로 이어집니다)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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