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순결한 해석에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의 알아낸 정보를 정리하면 이렇다.
9월 12일 밤, 이 목사의 집 앞에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종교의식 같은 읊조림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때 케빈은 없었다.
9월 13일 아침, 케빈은 지현씨의 시신을 자신의 차에 싣고 제주 사우나 주차장에 들어갔다. 케빈은 전날부터 그때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나타난 걸까? 정말 이 목사의 주장대로, 금식기도를 하다가 죽은 지현씨의 시신을 몰래 꺼내 차에 싣고 나간 것인가?
모순
이 목사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없이 지현씨가 금식기도를 하다가 절명했다면, 케빈이 지현씨의 죽음을 숨길 이유가 없다. 이 목사 가족에게 감추고 시신까지 몰래 빼내갈 이유도 전혀 없다. 경찰에 검거된 이후에도 자신은 살인범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빈을 포함한 여섯 명이 모두 살인으로 검거되었다.
이 목사의 집 지하 차고에서 지현씨가 죽었다는 사실은 미국 경찰이 확실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의 주장처럼 형제들이 지현씨의 죽음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것을 보면 이들이 지현씨의 살인에 기여했다는 경찰의 증거를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강력한 수준이기에 신상공개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이 목사가 내게 거짓말을 했거나, 정말로 몰랐거나.
답을 찾으려면 케빈이 제주 사우나에 나타나기까지 동선을 추적해야 했다.
나는 제주 사우나로 향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에 있는 뜻밖의 한국식 대형 찜질방. 들어가 보니 한국 찜질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리고 '제주'라는 정감 가는 이름과 달리 데스크에는 미국 사람뿐이었다. 프라이버시 의식이 철저한 미국인들이 한국처럼 CCTV를 협조해 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들이 내 말을 듣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5분 후…
매니저 김씨 아주머니가 남탕 문을 열고 나타났다. 짝 달라붙는 빨간색 피케티를 입은,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50대 여성이었다.
김순희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미국 취재에서 얻은 매우 드문 행운 중 하나였다. 20여 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온 인정 많은 아주머니는 고국에서 온 불쌍한 청년을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순희씨가 우리를 도와주려면 사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처음 사우나를 만든 사장님은 이제 출근은 안 하고 아들이 실질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다.
순희씨는 한 편으로는 사장님과 아들을 설득하고, 한편으로는 CCTV 시스템을 다룰 줄 아는 젊은 흑인 매니저에게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까칠했기에 그 설득 과정은 아주 지난했다. 나는 매일 그곳에 갔다.
여러 이유로 6번째 거절당하고 7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드디어 우리는 활짝 웃는 순희씨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찜질방의 한가운데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 CCTV 기계를 성스러운 마음으로 알현했다.
순희씨가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
부상
CCTV 영상에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23년 9월 13일 오전 10시 15분, 케빈의 은색 재규어 차량이 제주사우나 주차장에 들어온다.
10시 18분, 케빈 아버지의 흰색 벤츠가 들어온다. 케빈의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케빈의 차량 운전석을 열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10시 27분, 케빈의 아버지가 다시 차에 탄 뒤 흰색 벤츠의 뒷부분을 재규어 운전석에 가깝게 다시 주차한다. 그리고,
10시 35분, 케빈이 화면에 나타난다. 놀랍게도 케빈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거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가 케빈을 들다시피 부축해 벤츠 뒷좌석에 태운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차에 케빈을 싣고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덩그러니 남아있는 케빈의 차로 돌아온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차로 다가가 리모컨 키로 트렁크를 연 그는 한참 그 안의 무엇인가를 바라본다.
그렇게 지현씨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케빈이 감춘 것
케빈의 심각한 부상은 지금까지 그 어떤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었다.
아버지의 신고 직후 병원으로 찾아온 경찰들에게 케빈은 자신의 부상이 폭발때문이라고 답했다. 제주 사우나에 오기 전에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폭발이 있어서 둘 다 다쳤다는 것이다.
지현씨는 자신과 함께 집에 있었는데 트렁크에 들어갈 때는 살아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즉시 케빈의 주소지로 출동했다. 그 집은 케빈이 작년 미국의 한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대출을 받아 마련한 자그마한 타운하우스였다. 경찰은 그 집을 수색했지만 폭발의 흔적은커녕 지하실조차 찾을 수 없었다.
케빈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두 가지 방법으로 실제 범행이 일어난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케빈 차량의 등록 주소를 조회했을 때 위치가 로렌스빌의 이 목사 집으로 나왔고, 영사관을 통해 죽은 지현씨의 신원 조회를 했을 때 체류지 역시 이 목사의 집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이 목사의 집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케빈은 스스로 아버지를 시켜 신고까지 한 후에도 왜 거짓말을 했을까? 부상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던 걸까?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소식이 그쯤 터져 나왔다.
그즈음 어느 날의 오후, 케빈의 변호사가 TV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케빈도 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그도 김지현씨와 함께 그 지하실에 갇혀 있었어요. 몇 주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굶어야 했고 채찍으로 심하게 구타당했습니다. 그는 알몸으로 성기 부위를 맞았고, (용의자들은) 에어소프트건으로 그의 팔과 등 부분을 쐈습니다.”
케빈은 공범이 아니라 지현씨처럼 피해자라는 얘기였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주장할 내용을 근거 없이 꾸며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 말이 맞다면, 케빈이 지현씨를 돌보기 위해 지하실에 내려간 게 아니라 지현씨와 같이 갇혀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탈출이었을까?
이 씨 형제의 잔혹한 폭력을 견디다 못한 케빈이 지현씨와 함께 지하 차고의 문을 따고 도망친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만약 둘 다 피해자라면, 도망친 즉시 경찰에 신고하거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빈은 집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13일 아침까지 한참 시간을 끌었다. 경찰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부모에게도 13일 아침에서야 연락을 했다. 그 사이 케빈은 지현씨의 시신, 혹은 거의 죽어가는 지현씨와 함께 밤을 보낸 셈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퍼즐이 하나 빠져있었다.
잃어버린 조각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케빈은 이씨 가족과 24시간 함께 있었으므로 우리는 이씨 가족에게 조금씩 더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씨 가족의 주변을 샅샅이 탐문했다. 그 과정에서 첫째 이민우가 본인의 육성으로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영상을 확보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정말로 그 영들을 보는 영안이 열려서, 마귀 사탄들을 실제로 보고.. 그땐 정말 괴로웠습니다. 환상도 열리고..”
‘내가 뭘 들은 거지..?’ 귀를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저 친구를 못 낫게 했으면 제가 강단에 안 섰을 겁니다. 그런데 물리치료를 1년 넘게 다녀서 수천만 원 써도 낫지 않았는데 제가 기도한 그날 밤에 나아버렸습니다.”
위 발언은 이민우가 케빈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새벽 기도 때 폭우가 내리잖아요. 교회를 가야 되는데 비가 멈추지 않습니다. '비를 그쳐주시기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방언은 하나님이랑 직통이라고 제가 말했지요. 그러면 비가 멈추겠지 안 멈추겠어요? 태풍 네 시간 뒤에나 간다 그랬는데 30분 만에 멈췄습니다. 제 눈앞에서.”
말이 간증영상이지 자신에게 심취한 남자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는 더 뛰어난 신적 존재라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저희 어머니는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고 방언 기도를 10시간 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지금 기도 하시면 역사가 바로 나타납니다."
케빈 측의 변호사는 케빈이 이민우와 그 가족들에게 오래 정신적으로 지배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영상 속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지배의 매개체가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사람은 뱀을 본다
나는 케빈의 주변을 취재하면서 그에 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
케빈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었다. 친엄마는 케빈이 어릴 때 형편이 나빠져서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케빈을 입양 보냈다. 즉 작은 이모가 케빈의 양엄마가 된 것이다.
케빈이 시신을 싣고 제주 사우나에 나타났을 무렵 그를 따라온 것 역시 친아버지가 아니라 양아버지였다. 화질이 좋지 않은 CCTV 영상 속 아버지의 실루엣이 전형적인 백인 남성처럼 보였던 이유였다.
케빈은 쉽지 않은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외롭고 고독했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교 시절 이씨 형제들을 만났다. 종교적으로 강한 확신을 가진 이씨 형제, 그중에서도 동갑내기인 첫째 이민우와 케빈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처음에 친구였던 그들의 관계는 미국의 한인들이 거의 빠짐없이 연결되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점차 주종관계처럼 변모해 갔다.
외롭고 고독하고 사회적 기반이 없는 케빈의 입장에서, 신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의 허리를 낫게 하며 비까지 멈추게 하는(것처럼 보이는) 이민우는 어느새 친구의 경지를 넘어선 위치가 되었을 것이다.
사이비 종교를 오래 연구한 학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이단 교주에게 빠져드는 데는 주로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고독과 불안이다. 마음도 생활도 불안한데 대화할 사람도 없고 의지할 데 없을 때 거짓된 종교는 빠르게 인간의 마음을 잠식한다.
미국에 가서 많은 젊은 교포나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나는 마음이 위험해 보이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사회적 소수자로 지내면서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고, 학교든 직장이든 주변이 대부분 외국인이다 보니 교류할 사람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지 기자님들께 듣자 하니 이번 사건은 사람이 죽어서 한국까지 크게 알려졌을 뿐, 비슷한 한국형 이단 문제는 교포 사회에 드물지 않다고 한다.
둘째는 신비 체험이다. 그것이 기독교든 무속 신앙이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인간을 교주로 추종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신비해 보이는 사건이 놓여있다.
교주가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일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예언이 맞거나 교주를 통해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거나 환영을 보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외로운 사람들이 보는 뱀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종교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신에 의한 치유는 가능하다는 나름 학식 있는 신학 교수의 주장을 듣기도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일부 다양성의 영역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심리적 변화가 치유로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생
지금까지 파악하기로, 케빈은 이민우를 신 혹은 그에 가까운 존재라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의 비합리적인 믿음이 아니라면, 미국 조지아주에서 알아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까지 한 인물, 같이 일한 주변 모든 사람이 인성과 성실함을 칭찬하는 인물이 그런 잔혹한 폭력을 당하고 살인까지 개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 남아있었다.
지현씨에 대한 살인과 폭력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케빈은 왜 지현씨의 시신을 이 목사의 집에서 꺼냈는가?
이때 오랫동안 공들였던 만남이 이뤄졌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을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지현씨의 동생 지훈씨였다. 지훈씨는 누나가 죽은 후 미국에 어머니 윤 권사를 모시고 와서 누나의 시신을 확인한 뒤, 경찰로부터 수사 내용을 들었다.
누나의 죽음 이후 동생은 극심한 고통에 빠져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사소한 피해조차 끼치지 않으며 살아온 선한 누나가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겪으며 한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어머니 윤 권사가 ‘이씨 가족이 자신의 딸을 죽였을 리가 없다’며 여전히 사건의 실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붙잡아 세우면서 자신의 마음까지 다잡아야 했던 상황. 그렇지만 지훈씨는 이 집단의 악행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어렵게 마음을 내주었다.
우리의 취재가 막바지에 이르며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는 등 속도를 내던 때였다.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④ 축귀사역에서 계속)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