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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3시간전

너무 이른 이별과 너무 늦은 부고


장례식장에 곡소리는 없었다. 그간의 긴 밤에 인간이 낼 눈물은 다 흘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나 어머니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딸이 죽은 지 3년 2개월, 너무 늦은 장례식이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장례식장. 아버지 이주완씨를 오랜만에 만났다.


방송(그것이 알고싶다 1299회) 이후에도 종종 근황을 나눴지만 그간 답답한 이야기들이 쌓인 모양이었다. 손을 잡고 한참 이야기를 하시다가 테이블로 옮겨 다시 말을 쏟아내셨다. 점심을 굶어 허기가 치미는데 숟가락을 들 틈도 없었다. 군 의문사 문제를 꾸준히 취재해 오신 시사인 기자님 한 분이 합석해서야 나는 젓가락을 뜯었다.


예람씨는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하고 온 그날 저녁 목숨을 끊었다. 그 마지막 순간 예람이를 왜 혼자뒀을까..에서 시작하는, 그로부터 두 달여 전 성추행 사건에서 또 시작하는, 돌고 돌며 수만 번 반복했을 후회와 한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예람씨가 떠나고 나서도 엉터리 수사와 가해자들의 뻔뻔함을 보며 쌓인 울분의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의 격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항상 그 통화녹음이 생각났다. 방송을 편집하면서 수십 번 들었던, 생전에 예람씨가 심리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오는 길에 아버지와 나눴던 통화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음절 하나마다 막내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있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사람이 바싹 마르고 각진 얼굴이 되어있다. 깎지 못한 푸석한 수염은 하얗게 세었다.


영결식에서 아버님의 모습 (연합뉴스)


부모를 그렇게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

다시 한번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었다.


예람씨는 상관의 성추행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다. 성추행 이후 즉시 주변에 보고하고 정식 절차를 거쳐 가해자를 신고했다. 가해자를 포함한 상관들이 적당히 넘어가라고 온갖 압박을 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심리치료를 통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했다.


하지만 가해자 장 중사에 대한 수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미뤄졌다. (이것이 방송을 만든 이유다) 그는 예람씨가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소환되지 않았다.


예람씨는 원 소속부대였던 20전투비행단에 온갖 안 좋은 얘기가 떠돌자 자원해서 15전투비행단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전입 이유를 알게 된 선임은 “꽃뱀 같은 애가 왔으니 조심하라”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부대의 병사들까지 예람씨 얘기를 다 알게 되었다. 새로운 부대에 출근을 시작한 지 나흘 후 예람씨는 목숨을 끊었다. 성추행 사건 후 81일이 흐른 날이었다.


이예람 중사와 어머니, 아버지 (가족 제공)


아버지는 3년 2개월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예람씨의 시신을 안치해 두고 농성했다. 그동안 얻은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소장과 대장을 30cm가량 절제했다. 그로 인해 소화나 배변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재판에 가거나 집회에 가실 때는 아예 밥을 안 먹고 가신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분노는 이런 억울한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몸을 갉아먹는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비슷한  상황의 유가족들을 만나면 분노 조절이 잘 안 되고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거의 비슷하게 말씀하신다.


그중에서도 몸을 태워버릴 듯 그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말은 “눈물 닦고 그만 일어서자”는 말이었다. 도종환 시인의 시구처럼 그 사건들은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있을 아픔’이며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인데 말이다.


예람씨 가족의 행복했던 시간 (가족 제공)


어머니도 한동안 건강이 안 좋으셨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딸의 시신이 안치된 군부대 병원에서 그 긴 시간 살았던 부부다. 평범하고 따뜻했던 그 가족은 이제 유가족이 되었다.


3년 2개월이나 걸린 너무 늦은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딸을 영원히 보내기에는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이주완 아버님과 박순정 어머님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해 온 만큼 예람씨 홀로 가는 길도 외롭지 않기를...


미드저니로 그린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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