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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17. 2024

존잘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십년지기 친구들을 만났다. 늦은 밤까지 어두컴컴한 카페에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이야기들이었다.


Dall-e3로 그린 삽화


다짐


친구 (30대 초반 여성, 가명)은 남자친구가 지방으로 잠시 인사발령을 받았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일 때문이니 잘 다녀오라고 보냈다.


그런데 남친은 그쪽 클럽에서 만난 여대생과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그 여대생의 몸을 불법촬영해 자기 친구와의 카톡방에 공유했다. 어느 날 남친을 만나러 간 별이 그 카톡방을 발견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그 카톡방에서 자신을 두고서는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성관계 불법 촬영은 없었을까? 그 카톡방에 있던 온갖 더러운 대화는 남친과 헤어진 후에도 별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었다.


친구 (30대 초반 여성, 가명)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동네에 새로 개업한 음식점에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서른살 전후의 사장과 알바생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자주 드나들다 보니 동년배인 그들과 가까워지고 종종 술자리도 하게 되었다.


그중 한 남자가 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서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난 어느 주말 아침 7시, 남친 번호로 해에게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 의아해하며 받으니 웬 앳된 여자 목소리였다.



그 여자는 남친과 만난지 4년이 넘은 세컨.. 아니 퍼스트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또 다른 여친이었다.


그녀는 그 남자와 자고 일어난 아침, 뭔가 한 기분이 들어서 남자의 폰을 열었다가 해와의 통화내역을 발견한 것이다. 남자는 해와 나눈 카톡은 미리 치밀하게 다 지웠다고 한다. 하지만 통화 내역을 지우는 것은 깜빡했다. 여자는 그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누가 퍼스트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여자는 조우하게 되었다.


글이 길어질까봐, 그리고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요약했지만 더 더러운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읽는 분들의 시청각 보호를 위해 생략한다.


비혼을 다짐하는 두 여성 사이로 최근의 기괴한 소식들이 떠올랐다. 케겔 연습으로 ‘쪼여서’ 아이를 많이 낳아보자는 국힘당 시의원의 ‘댄조운동’이나, 여자를 1년 먼저 입학시켜서 연애 확률을 높이자는 국책 연구원의 제안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정도면 거의 출생률 제로를 향한 거침없는 도전이다.


안구보호를 위한 흑백처리


한편으로 이들보다는 어린 전형적인 ‘Z세대’ 지인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20대 초반 여성, 가명)은 아는 오빠와 몇 달째 ‘삼귀는’ 중(사귀기 전 단계)인데, 손도 잡고 팔짱도 끼는데 굳이 사귀지는 않는다고 한다. 연애하자는 게 무슨 대한독립선언도 아니고 거기까지 갔으면 한번 해봄직 한데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니


‘성병이 걱정돼서’라고 말한다.


위에 예로든 친구들뿐 아니라 여성 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폭력적 남성, 거짓말하며 바람피우는 남성, 성매수를 하거나 여러 여성과 성관계하며 HPV(인유두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남성에 대한 공포감은 일상적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앉아있는 남성으로서 위 모든 친구들에게 ‘그래도 괜찮은 남자 있을 거야’ 따위의 멘트가 멍청하게도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회 생활하며 10여 년간 남성 사회에서,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내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다양한 ‘형님’들이 보여주거나 들려준 것들에 비춰, 주변 여성들의 우려가 지나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미드저니로 그린 삽화


유리 징검다리


이런 공포감이 과한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보수적인 셈법을 시도해 볼 수는 있다. 2016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우리나라 성매매 규모를 최소 30조 원으로 추정했다. 전형적인 음지 산업이므로 정확한 통계는 안되고, 통상 검거율이 4~5%이고 이를 통해 파악한 매출 규모가 1.5조 정도니까 대강 20을 곱해서 30조라는 것이다.


이런 계산으로 다음 단계의 추론을 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니 그 수치에 아주 보수적으로 1/10을 곱해서 3조라고 생각해 보자.


넉넉잡아 한 명이 연간 평균 성매매에 100만 원을 쓴다고 계산하면, 3백만 명이 해야 3조다. 평균이 50만 원이면 한 해에 600만 명이다. (물론 평균이 얼만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매수하는 사람의 비율에 대해서도 어렴풋한 추정이 가능하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마부작침)의 2018년 성매매 리포트에 인용된 여성가족부 ‘2016 성매매실태조사’에서는 표본조사한 남성 1050명 중 50.4%가 평생 한 번 이상의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가부 질문에 진실한 답을 했을까?)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규모다. 하지만 여러 번 연애를 하는 동안 성매수를 했거나 성병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낮은 확률을 통과해야 한다. (오겜에서 유리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화유리가 아닌 일반유리를 밟으면 추락인데, 한 번은 잘 밟아도 다음에 잘못 밟으면 추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갈수록 존잘남의 주가는 높아지고 있다는 특이한 소식이 들려온다.


풀어쓰면 존나 잘생긴 남자...정도인데, 덕질할 때 ‘얼빠’들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더더욱 주변에서도 대놓고 잘생긴 남자를 선호하는 여자들이 많다.


어떤 남성들은 여성들이 존잘남을 좋아하는 것을 얄팍하다고 비난하거나 스스로를 도태남이라고 부르며 도태남들의 대동단결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성들이 접하는 스토킹, 폭력, 교제살인, 성매매, 성병 등 온갖 무서운 실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성에 대한 관심을 끊지는 않았다는 것이 더 도드라지게 보였다.




존잘이 성매매 안 하는 남성, 바람피우지 않는 남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여성들이 잘 안다. 이것은 케겔 운동과 조기 입학으로 출산 장려를 하겠다는, 즉 어떻게든 여성을 바꿔 결혼 가능 상태에 던져놓으면 아이도 팡팡 낳고 아무 남자와 찐한 사랑을 할 거라고 믿는 시대의 일종의 관계 파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쨌든 본능적 관심을 는 절반의 인류 - 남성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도달한 이 시대 여성들의 어쩔 수 없는 추구미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추구미가 막연히 존잘이라는 말 안에서 납작해져 버렸지만.. 사실 사람이 느끼는 매력이란 각자의 결핍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저음 목소리에, 누군가는 뿔테 안경에 꽂힌다. 남친의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기형이어서 살짝 굽어있었는데 그게 계속 마음을 끌어 가더라는 지인도 있다.


존잘남에 대한 선호는 어떤 이끌림을 매개로 이성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남자, 인간으로서 원칙과 상식을 갖추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남자가 있다면 '슈퍼 이끌림'도 얼마든 가능하다. 그러니 존잘이 아니어도 도태라고 생각하며 화내진 말자. ☀︎




한 주를 시작하며 쓰는 약을 처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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