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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08. 2024

인도 친구와 카레 미역국


한동안 인도처럼 덥다가 잠시 북쪽의 바람이 불어온 서울, 서촌의 밤.


바글대는 체부동 먹자골목에서 나는 인도 사람 아밋을 마주했다.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과 대화하는 건 인생 처음이었다. 부족한 영어는 내 오랜 친구이자 아밋의 아내이며 언어 천재인 민정이 채워주었다.


민정과 아밋은 영국 런던의 한 대학에서 석사 과정 중 만났다. 그들에게 런던의 물가는 한없이 비쌌고 학비와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외식은 꿈꾸기 힘들었다. 둘은 기숙사에서 서로의 방을 오가며 요리를 만들어 나눠먹었다. 민정은 아밋의 생일 밥상을 차려주겠다며 카레에 미역을 듬뿍 넣은 지구적 신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카레 미역국’은 곧 멸종했지만 요리에 담긴 마음은 아밋의 심장에 영원히 남았다(고 한다). 


고학생 커플은 화려한 런던 거리를 소비가 아닌 산책으로만 체험했다. 하지만 무엇이 두려우랴. 그들은 템즈강에 흔히 떠 있는 오리 한 쌍을 보면서도 운명을 예감했다. 


Dall-E3로 그린 삽화


민정이 아밋과 평생을 약속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아밋의 고향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성대한 전통 혼례를 올린 후, 민정은 반년 가량을 그곳에 머물렀다. 아밋의 가족들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생활상의 불편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 뜨악했던 일화도 있었다. 한 번은 민정이 생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식사를 별도의 테이블에서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생리 기간에 여성은 메인테이블에서 가족들과 같이 식사할 수 없다는 전통적 규율이 있다는 것이었다. 민정은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그 대가족 사이에서 좀 민망했다. 아밋이나 가족들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녀에게 사과했고 민정은 받아들였다.


전통이란 사람들의 뼈에 녹아있는 것이다. 벽이라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나의 위대한 친구 민정은 벽보다 큰 여자였다. 가벼운 주머니로도 혼자 중국, 일본, 영국, 스위스에서 생활하며 모든 세계인들을 친구로 만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전통의 다름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인도 어르신들이나 시누이들과도 친구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녀가 시누이와 춤추는 영상은 내게 약간의 문화 충격을 줄 정도였다.



그랬던 그들이 계절 따라 거주지를 옮기는 새들처럼 날아왔다. 민정의 직장 문제로 잠시 한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뜻밖에도 아밋은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진한 막걸리를 들이키며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생활 한 달 만에 아밋은 한국의 풍경과 문화에 푹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눈이 편하다고 했다. 인도는 땅을 다 개간해서 농사를 짓는 터라 생활 지역 근처에 녹지랄게 없는데 한국은 어디를 가도 산과 나무가 있으니 보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교통, 통신 인프라와 깨끗한 거리까지 아밋은 한국에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쏘 쿨~을 연발했다)


아밋은 인도의 엘리트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병원에서 의사로 6년간 일했다. 그는 인도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즉시 진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돈이 없거나 소외 지역에 살아서 병원 문턱을 넘기 힘든 현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의료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의료 정책이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의사 가운을 벗고 국제보건기구 WHO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전 세계의 의료 정책을 연구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WHO는 멀린다-게이츠 재단 같은 미국 자본가들의 의지에 지나치게 지배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의 중요한 문제도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밋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영국에서 의료정책학을 공부하다 민정을 만난 것이었다. 학위를 딴 후 영향력 있는 미국의 한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도 오케이라는 그 회사의 재택근무 시스템 덕분에 그는 지금 아내의 나라에 머물 수 있었다.



아밋의 얘기 속에 인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가 설명하는 인도 사회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지만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넘쳐나고, 도시로 인구는 꾸역꾸역 밀려들고, 주거지에는 전봇대와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차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나라. 복잡하고 규모도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인도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 외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작은 NGO를 만들었고 구체적인 과제를 수립해 움직이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렇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 돈벌이나 성공이 아닌 타인의 문제에 헌신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별것 아닌 대화에도 마음이 일렁였다. 보통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99%가 투자나 스포츠나 연애나 결혼생활 이야기인데... 우리는 이 작은 술상 앞에서 지구의 문제를 논하고 있지 않은가. 뭔가 엄청난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한 사람과 관계 맺으니 하나의 빛나는 세계가 새로 생긴다. 아밋은 다음에는 인도에 꼭 와서 같이 여행을 하자고 당부했다. 보여줄 게 많다는 말속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머지않아 우리는 그렇게 같이 걸을 것이다. 셋이 함께할 그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 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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