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와 치킨
대학 기숙사 시절의 브이로그 - 나이키와 치킨
나는 1980년대 초반 경영학과 학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ARS 전화도 없던 시기여서, 대학 합격발표를 학교에 가서 확인해야만 했다. 발표날 고향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버스를 갈아타고 합격자 발표 장소까지 갔다. 추운 겨울 운동장의 관중석 아래 스탠드 벽에, 붓글씨로 빼곡히 쓴 합격생들의 수험번호 두루마리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합격자 수험번호 가운데서 내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눈도 많이 쌓여 있었다. 부산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나는 서울의 눈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게다가 탁 트인 운동장이다 보니 바람도 거세어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다.
내 수험번호가 눈에 쏙 들어왔고 순간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토끼처럼 뛰었다. 요즘 같았으면 스마트폰 영상전화로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겠지만, 그때는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한 사진사가 나에게 수험번호가 붙은 벽 쪽에 잠깐 서보라고 했다. 사진을 몇 번 찍더니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집주소를 물어보고 사진금액을 나에게 말했다. 비쌌지만 집에서 챙겨 온 돈으로 지불했다. 혹시 안 보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당시 기분으로는 설사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이 대학교에서 찍은 나의 첫 번째 사진이 되었다. 작은 형이 내가 합격한 대학에 몇 번 낙방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방 안쪽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모습이 불현듯 기억났다. 어머니를 위로해 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했다.
나는 지방 출신이어서 대학 기숙사에 배정되었다. 가, 나, 다, 라… 로 이어지는 기숙사 동에서 나는 ‘자’ 동에 배정되었다. 차동부터는 여자 기숙사였으니, 우리 동은 남자 기숙사의 마지막이었고 식당과도 인근에 위치해 로열 동이었다. 게다가 신관 지역이어서 구관에 비해 전체적인 시설도 깨끗했다. 강원도 천재 물리학과 친구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책꽂이, 책상, 의자, 침대, 옷장이 등은 개인별 비품이었고 개별 방에 샤워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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