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정치

by 구포국수

메이지유신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은 1868년을 전후로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 국가를 만든 정치·사회적 대전환. 짧게는 1868년 정변 자체를, 넓게는 메이지 시대(1868–1912)의 근대화 과정 전체. 도쿠가와 막부(에도 막부)는 1603년 성립 이후 약 260년간 일본을 통치한 봉건 군사 정권. 장기간 평화로 경제·도시문화는 발달했지만, 인구 증가와 잇단 흉작, 상인 자본 성장에 비해 농업 생산력·재정은 정체, 막부와 번의 재정 파탄이 심각.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후, 막부는 미·일 화친 조약(1854), 안세이 5개국 조약(1858) 등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강제 개항. 관세 자주권 상실·치외법권 허용 등으로 국가 주권 침해 인식이 확산되고, “막부가 서양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사무라이·지식인 사이에서 거세짐. 이 과정에서 “존왕양이(尊王攘夷) = 천황을 받들고,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라는 운동이 번성하고, 막부 타도 여론과 결합.


서남부의 유력 번인 사쓰마(薩摩), 조슈(長州), 도사(土佐) 등은 막부에 비판적이었던 토자마 다이묘(외번) 세력. 이들은 존왕양이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서양과 경쟁하려면 중앙집권 근대 국가가 필요하다”는 현실파로 변화. 1867년 10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선언. 하지만 사쓰마·조슈 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68년 1월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발표해 막부·도쿠가와 가문의 정치적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고, 메이지 천황(무츠히토) 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부 수립을 선포.


이를 둘러싸고 친황 세력 vs 구 막부 세력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보신전쟁. 주요 전투는 토바·후시미 전투, 에도(도쿄) 무혈개성, 우에노 전투, 아이즈 전선, 마지막으로 하코다테 전투 등. 결과적으로 신정부군(사쓰마·조슈 연합)이 승리하여 막부는 완전히 붕괴하고, 일본 전역이 메이지 정부의 통치 아래 들어가.


유신 정부의 핵심 목표는 “근대 국가 만들기”였고, 그 슬로건이 바로 “부국강병(富国強兵), 식산흥업(殖産興業)” = 부유한 나라, 강한 군대, 산업 발전. 메이지 일본은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군사력 강화와 함께 대외 팽창에 나서. 1879년 류큐 왕국(오키나와)을 병합, 1894–95년 청일전쟁, 1904–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조선·대만·남사할린 등을 차례로 지배. → 즉, 메이지 유신은 단순히 ‘서양에 당하지 않기 위한 근대화’를 넘어, 곧 “서양식 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하는 출발점” 이 되었다는 평가.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서구 식민지화를 피하고, 스스로 근대 국가를 만드는 데 성공. 단기간에 중앙집권 행정, 근대 법·헌법, 의무 교육, 근대 군대·산업·교통망을 구축하여 20세기 초 ‘열강’의 일원. 무엇보다 강력한 군대와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기초가 되어, 이후 쇼와 군국주의·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면도 있다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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