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구분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1912~1926)는 흔히 “다이쇼 데모크라시 + 모던 보이/모던 걸 + 1923 관동대지진” 이 세 키워드로 많이 정리. 기간: 1912년 메이지 천황 사망 → 다이쇼 천황 즉위 ~ 1926년 다이쇼 천황 사망. 메이지의 국가 주도 근대화·제국주의에서 한 발 물러나, 정당정치·의회 중심의 “다이쇼 데모크라시” 가 발전한 시기. 도시 중산층·청년·여성의 개인주의·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 서양 모던 문화와 일본 전통이 뒤섞인 “모던” 분위기.
다이쇼 천황은 건강이 좋지 않았고, 메이지 때 막강했던 원로(겐로) 들도 고령화로 영향력 약화. 대신 정당(세이유카이, 켄세이카이 등) 중심 내각이 점점 늘어나, “정당 내각 시대” 라 불릴 정도로 의회 정치가 강화. 제1차 세계대전 후 물가 폭등 + 쌀값 급등 때문에 1918년 여름 전국에서 쌀 소동(미소동) 이 폭발. 이 사태로 데라우치 내각이 총사퇴하고, 첫 ‘본격 정당 내각’인 하라 다카시 내각이 출범. → 민중·여론의 힘이 내각 교체를 이끌어낸 상징적인 사건이어서,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영국과 동맹 관계라 연합국 측으로 참전. 중국 칭다오의 독일 조차지 공격, 남태평양 독일 식민지 점령 등 해외 영토를 조금 넓히는 데 성공. 전쟁 특수로 공업·수출이 호황, 국내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성장. 전쟁 후 미국 주도로 열린 워싱턴 군축 회의에서 일본은 해군 군축(5:5:3 비율)을 받아들이고, 중국·태평양에서의 세력 범위를 어느 정도 조정. 이 시기는 미국·영국과 협력하는 “국제 협조 외교”가 비교적 잘 유지된 마지막 시기.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도쿄·요코하마 일대를 직격해 사망·실종 10만 명 이상, 도쿄 재산의 약 10%가 한 번에 날아갈 정도의 경제적 피해. 도시의 옛 상업 지구(시타마치)가 크게 파괴되고, 재건 과정에서 근대적 도로·건축·인프라가 깔리면서 도쿄는 한층 더 “모던 시티”로 변해.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바로 도시 중산층 청년·여성의 모던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