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구분
메이지 시대
메이지 시대는 보통 1868년 메이지 유신 ~ 1912년 메이지 천황 사망까지를 말하고,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부국강병’과 서구화를 내걸어, 극단적으로 빠른 속도로 근대 국가·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한 시기”. 1867년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대정봉환)했다가, 사쓰마·조슈 세력과의 내전(보신전쟁) 끝에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 1868년 “왕정복고” 선포, 메이지 천황을 앞세운 새 정부가 출범 → 이것을 통틀어 메이지 유신. 1871년, 각 번(藩)을 없애고 도·부·현(県)으로 재편, 옛 번주 대신 중앙에서 파견한 관료가 통치. → 사무라이 다이묘 중심 봉건제 → 근대적 중앙집권 국가 로 전환.
1889년 메이지 헌법 공포, 1890년 제국의회(의회, 국회) 개설. 입헌군주제(“천황이 주권자”라는 형태) 아래 귀족원(상원)·중의원(하원) 구성. 실제 권력은 한동안 원로(겐로)·군부·관료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입헌 제도 자체는 이때부터 시작. 메이지 정부의 슬로건은 딱 두 글자: 부국강병(富国強兵). “나라를 부유하게,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개혁을 밀어붙여.
정부가 먼저 제철·탄광·방직·조선소 등 관영(국영) 공장을 세운 뒤, 이후 민간(미쓰이·미쓰비시 등 자이바쓰)에 헐값 매각하여 재벌(財閥)의 기반. 메이지 정부는 사(士)·농·공·상 신분제를 공식 폐지하고, 옛 사무라이를 포함해 모두 “국민(신민)”으로 재분류. 사무라이의 봉록(쌀 급여)은 현금 공채로 바뀌고 결국 끊기면서 칼 차고 연금 받던 계층 → 순식간에 ‘무직자’ 로 전락. 이 과정의 불만이 여러 사무라이 반란(사쓰마의 난 등)을 낳아.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의 난은 “옛 의리를 버리고 돈과 서양을 좇는 신정부”에 대한 반발 +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 불만이 폭발한 내전. 근대식 징병군이 사무라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사무라이 시대의 최후” 상징 사건으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