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임진왜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조선을 침략하고, 명·조선 연합군과 싸운 동아시아 국제전. 일본에서는 보통 분로쿠의 역(文禄の役, 1차)·게이초의 역(慶長の役, 2차), 또는 분로쿠·게이초의 역(文禄・慶長の役)이라고 불러. 기간: 1592년 4월 ~ 1598년 11월 (실전은 7년 전쟁 규모). 침략 측: 도요토미 정권의 일본(사무라이 군). 방어 측: 조선(조선왕조) + 명나라(원군). 1차 침략 – 분로쿠의 역 (1592~1593), 휴전·외교 교섭 (1593~1596), 2차 침략 – 게이초의 역 (1597~1598), 히데요시 사망 → 일본군 철수로 종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을 이룬 뒤 일본 내부 다이묘들에게 줄 새 토지·전리품이 부족해지자 대륙 침공(명 정복)을 구상. 조선을 통과로 삼아 중국을 정복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조선에 여러 차례 “길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보냈지만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무력 침공으로 이어져. 전국 통일 후에도 강력한 무장을 거느린 다이묘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외부 전쟁에 내정 불만 세력을 묶어두려 했다”는 해석도 있어.
1592년 5월, 일본군 약 15만~16만 명이 쓰시마를 거쳐 부산에 상륙. 초반엔 조선의 국방·지휘 체계가 혼란해 부산·다대포, 동래성 등이 빠르게 함락되고 일본군은 서울(한양) 과 평양까지 단기간에 점령. → 3주 만에 한양, 3개월 남짓 만에 평양까지 무너질 정도로 초기 충격은 매우 커. 그러나 바다에서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거북선·판옥선 중심의 중·대형 함정과 화포 운용으로 일본 수군을 연달아 격파.
특히 한산도 대첩(1592.7/8) 에서는 학익진 전술로 일본 함선 약 100척을 격침시키며 일본의 해상 보급로를 심각하게 타격. → 이로 인해 일본군은 보급 부족으로 평양·한양 방면 진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짐. 조선 내부에서는 승려·유생·농민이 참여한 의병(義兵) 들이 각지에서 일본군 후방을 공격. 1592년 말~1593년 초, 마침내 명나라 원군(이여송 등) 이 참전하여 평양을 탈환하고 일본군을 한강 이남으로 밀어냄. 일본군은 부산·울산 등 남부 거점성 들로 물러나 장기간 주둔하고, 명·조선과 일본은 여러 차례 강화 교섭을 시도하지만 명은 일본을 조공 체제 내의 한 ‘번국’ 정도로 인정하려 했고, 히데요시는 “중국 황제의 양위를 받겠다”는 등 과도한 요구를 내세워 교섭은 결렬과 재개를 반복.
1596년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된 후, 히데요시는 다시 한번 대규모 침략. 1597년, 일본군 약 14만 명이 재차 부산·남해안 일대에 상륙. 육지에서는 초기 여러 성과를 거두며 다시 내륙으로 진격하지만, 1차 때만큼 빠르게 북상하진 못해. 2차 침략 직전, 조선 수군은 원균의 패전(칠천량 해전)으로 거의壊滅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이순신이 통제사로 복귀. 1597년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단 13척의 전선으로, 좁고 조류가 센 명량 해협을 이용해 일본 함대 100여 척 이상을 격파, 조선 수군을 재건.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 내 정국은 후계 다툼(세키가하라로 이어지는)으로 급속히 변하고, 5대 노(五大老) 들은 조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 철수 과정에서 노량 해전(1598.11) 이 벌어지고,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일본 함대 200여 척과 싸우던 중 전사.
조선에서는 수십만 명 이상의 사망·실종, 포로·노예화가 이루어졌고, 많은 장인·도공들이 일본으로 강제 이주 당해 일본 도자기·공예 발전에 이용. 일본군은 전공 보고를 위해 머리 대신 귀·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냈고, 교토에는 이들을 모아 만든 ‘미미즈카(耳塚, 코무덤)’ 유적이 남아 있어. 이는 전쟁의 잔혹성과 비인도성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기억. 일본도 7년 전쟁 동안 수만~수십만 병력 손실과 막대한 재정 지출로 도요토미 정권의 기반이 약화. 명나라 역시 원군 파병으로 군비·재정 부담이 커지고 군제의 약점이 드러나, 17세기 만주족 청에 의해 멸망하는 과정에 장기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고 에도 막부 성립(1603) → 이후 200년 가까운 쇄국·내치 중심 정책으로 방향 전환.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 일본의 침략 전쟁” 으로, 이순신·의병 등의 저항이 민족 영웅 서사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