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 전쟁

전쟁

by 구포국수

보신 전쟁


보신 전쟁(戊辰戦争, 1868~1869)은 에도 막부 세력 vs ‘왕정복고’를 내건 사쓰마·조슈·도사 등 신정부 세력이 싸운 내전으로, 결과적으로 도쿠가와 막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메이지 정부(메이지 유신)를 확정시킨 전쟁. 기간: 1868년 1월 ~ 1869년 5월. 성격: 일본 전역을 무대로 한 시민전쟁(내전). 막부군: 에도 막부(도쿠가와 요시노부) + 막부에 충성하는 여러 번(藩). 신정부군(“관군”): 사쓰마(鹿児島), 조슈(長州), 도사(土佐) 등 “사쓰초도 동맹” + 여러 번이 천황 측에 가담한 연합군. 막부 세력 패배, 도쿠가와 정권 종말, 천황 중심의 메이지 정부 수립, 근대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림. 규모: 동원 약 12만 명, 사망 약 8,000명 이상 – 메이지 이전 최대 규모 일본 내전으로 평가.


1853년 페리 내항 이후, 막부는 서양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개국. 사무라이·지방 번들 사이에서 “막부가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받들고 외세를 몰아내자) 운동이 확산. 사쓰마·조슈 등 서남 번들은 서구식 군제·무기 도입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점차 “막부 대신, 천황 중심 새 정부를 세우자”는 쪽으로 입장 변화. 1866년 사쓰마–조슈 동맹, 1867년 도사 번(사카모토 료마 등)의 중재로 “도쿠가와가 정권을 천황에게 돌리고, 새 내각형 정부를 만든다”는 구상이 탄생.


1867년 11월,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공식적으로 정치 권력을 천황에게 돌리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선언. 그러나 사쓰마·조슈 세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같은 해 12월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발표해 도쿠가와 집안을 “일개 귀족”으로 격하하고 군사·행정권을 빼앗으려 함. 이에 불만을 품은 막부 측이 무력으로 세력 회복을 시도하면서 보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


토바·후시미 패배 이후 요시노부는 전투 지휘를 포기하고 오사카를 떠나 에도로 퇴각, 실질적으로 막부군의 주력은 붕괴. 승세를 탄 신정부는 “에도 정벌”을 선언하고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 등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동진. 한편 에도에서는 막부 측의 정치가 카쓰 가이슈가 사이고와 직접 협상을 벌여, “에도 시내의 전면전은 피하고, 평화적으로 성을 넘긴다”는 합의를 이끌어내. 1868년 4월, 에도 성은 거의 한 발도 쏘지 않고 신정부에 인도되어 이후 일본 수도(도쿄)의 기반.


그래도 에도 안에는 막부 및 쇼군가를 끝까지 지키려는 무장 집단(쇼기타이 등)이 남아 있었고, 이들이 우에노(上野)에 집결하며 최후 저항. 신정부군은 우에노에서 포·총을 동원해 단시간에 진압, 에도시는 사실상 완전히 신정부의 통제 아래 들어가. 막부 중심부가 무너진 뒤에도, 동북·북해도(홋카이도) 여러 번들은 “도쿠가와에 대한 충성” 을 이유로 신정부에 저항. 신정부군은 에도에서 북상하여 우츠노미야, 나가오카(에치고), 센다이 등지의 저항 세력을 차례로 격파. 1868년 11월, 아이즈가 항복하면서 혼슈(본州)에서의 대규모 전투는 거의 마무리.


막부 해군 사령관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는 최신식 증기선으로 구성된 막부 함대를 이끌고 북해도(에조)로 탈출. 그곳에서 일부 구막부 무사와 함께 서양식 별 모양 요새 고료카쿠(五稜郭)를 중심으로 “에조 공화국(蝦夷共和国)”을 수립, 신정부와 대치. 신 정부는 새로 창설한 메이지 정부 해군과 육군을 동원해 1869년 봄 하코다테(函館) 전역을 개시. 이 전쟁에서는 증기 군함끼리의 근대 해전, 서양식 제복·소총·포병을 갖춘 부대 간 전투가 벌어져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전”으로도 불려. 1869년 5월, 고료카쿠 요새가 함락되고 에노모토가 항복하면서 보신 전쟁은 완전히 종결.


보신전쟁 승리 후, 메이지 정부는 1868년 이미 천황의 도쿄 천도(Edo → Tokyo 개명)를 단행했고,1871년에는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번(藩)을 없애고 전국을 중앙정부가 임명한 지사가 통치하는 현(県) 체제로 재편. 보신 전쟁을 통해 “천황 정부가 일본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메이지 정부는 근대 헌법·의회, 서양식 군대·교육·산업 정책 등 급속 서구화·근대화를 추진. 막부는 1860년대에 프랑스 군사고문단의 지원을 받아 서양식 부대를 육성했고, 반대로 사쓰마·조슈는 영국 상인·군사고문을 통해 무기·함정을 도입하는 등 영국과 가깝게 지내. 그래서 보신 전쟁은 “영국이 지원한 천황 측 vs 프랑스가 지원한 막부 측”이라는 국제정치적 색채도 일부 갖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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