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전쟁

by 구포국수

제1차 세계대전


일본의 제1차 세계대전 참여로 연합국 편에 서서 독일령 식민지(칭다오·남양군도)를 빼앗고, 이를 발판으로 중국·태평양에서 제국주의 영향력을 키움. 전선 한복판에서 참호전에 끌려 들어간 유럽과 달리, 일본은 적은 피해로 많은 이익을 챙긴 쪽. 일본은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과 군사 동맹 관계에 있었고, 동맹 조항에는 “영국이 전쟁에 들어가면 일본이 도와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어. 1914년 8월 독일과 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일본에게 “동양에서 독일 해군과 식민지를 처리해 달라”고 요청. 일본 내부에서도 독일의 중국 산둥·태평양 섬 식민지를 빼앗을 기회, ‘열강’으로 인정받을 기회로 보고 참전에 긍정적. → 1914년 8월 23일,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연합국(협상국) 측으로 1차대전에 참여.


일본은 영국군 일부와 함께 칭다오를 포위·포격했고, 1914년 11월 7일 독일 수비대가 항복하면서 항구를 점령. 이 전투가 일본의 1차대전 지상전의 가장 큰 전투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 뒤로는 특대 규모 육전은 거의 없어. 일본 해군은 독일령 마리아나·캐롤라인·마셜 제도 등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섬들을 잇달아 점령. 이 섬들은 전쟁 후 국제연맹 위임통치(남양군도) 형태로 일본이 맡게 되어, 훗날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의 전진기지로 활용.


1917년부터 일본은 지중해에 순양함·구축함 함대를 보내, 영국·프랑스의 수송선을 독일 U보트 공격으로부터 호송. 이건 일본이 “유럽 전선도 돕고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이기도 했고, 동시에 해군 실전경험을 쌓는 계기. → 일본의 1차대전 전투는 “동아시아·태평양에서 독일 식민지 빼앗고, 해군으로 연합군 보조”라는 성격. 유럽 열강이 유럽 전선에서 정신없는 틈을 타, 일본은 1915년 1월 중국(당시 중화민국 정부)에 비밀리에 “21개조 요구(二十一箇條要求)”를 제시. 일본이 칭다오와 산둥에서 차지한 독일 권익을 정식 인정하라. 남만주·내몽골 남부에서 철도·광산·거주·치안 등 광범위한 권리 보장. 한중 철도·항만 관련 일본 우선권 등. 중국이 거부하자, 일본은 최후통첩을 보내 압박했고, 결국 중국은 다섯 번째 그룹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수락할 수밖에 없어. → 즉, 1차대전 중 일본은 전쟁에 직접 뛰어든 대가로 중국·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크게 넓히려 했고 실제로 상당 부분 성공하지만, 동시에 주변국·열강의 경계심도 키워.


일본은 승전국의 일원으로 파리 강화회의에 대표단을 보냄. 이미 전쟁 중 독일령 태평양 섬·산둥권익을 장악해 놓았기 때문에, 회담에서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했어. → 즉, 일본은 1차대전 승전국 으로서 정식으로 “태평양·중국에서의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들어간 셈. 유럽 열강이 전쟁으로 산업 생산이 떨어지자, 일본은 대신 무기·섬유·선박 등을 대량 수출하며 엄청난 호황. 이른바 “대전 특수(大戦景気)”로 공장·도시 노동자 증가, 주식·투기 붐, 대기업·재벌(자이바쓰)의 성장이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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