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중일전쟁

전쟁

by 구포국수

제2차 중일전쟁


제2차 중일전쟁(第二次中日戦争, 1937~1945)은 일본 제국이 중국 대륙을 본격 침략·점령하려다 국민당 정부·공산당 세력의 장기 항전에 막혀 실패하고, 결국 태평양전쟁의 일부로 끝나게 된 “아시아판 제2차 세계대전”의 핵심 전쟁. 보통 중국에선 항일전쟁(抗日战争), 일본에선 당시 “지나 사변(支那事変)” 이라고 불러. 공식 기간: 1937년 7월 7일 마르코폴로 다리 사건 ~ 1945년 9월 2일 일본 항복.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일본 관동군이 만주(동북 3성)을 군사 점령, 193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괴뢰국 “만주국”을 세움.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이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자, 일본은 국제연맹 탈퇴(1933) → 국제 고립 vs 군부 폭주 가속. 이후 일본군은 북중국(베이징·톈진 주변)에도 영향력을 넓히며 잦은 “사건(충돌)”을 일으켰고, 국민당 정부(장제스)는 내전·공산당 문제 때문에 소극 대응을 할 수밖에 없어. → 이 긴장 상태에서 1937년 마르코폴로 다리 사건이 터지며 “국지 충돌 → 전면전”으로 한 번에 폭발.

1937년 7월 7일 밤, 베이징 남서쪽 마르코폴로 다리(루거우차오) 부근에서, 군사훈련 중이던 일본군과 중국군 사이에 “총성이 누구 쪽에서 먼저 났는지 불분명한 충돌” 이 발생. 일본군은 “실종된 병사를 찾겠다”며 성(완핑) 안 수색을 요구했고, 중국 측이 거부 → 양측 교전 확대.


1937년 여름~가을, 일본군은 베이징(당시 베이핑)·톈진 등 화북의 핵심 도시를 빠르게 점령. 장제스 국민정부가 “정면 항전”을 선언하며 대도시 상하이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임. 양측 수십만 병력이 투입된 격전 끝에 일본 승리, 중국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 상하이 함락 후 일본군은 수도 난징으로 진격, 12월 13일 도시 점령. 점령 직후 약 6주 동안 일본군에 의한 대량 학살, 집단 성폭력(강간), 방화·약탈이 조직적으로 자행. 사망자는 대략 10만~30만+ 명으로 보는 견해. → 난징대학살은 오늘날까지 중·일 관계에서 가장 큰 역사 갈등의 쟁점 중 하나. 난징 함락 후, 국민정부는 내륙 우한(한커우·우창·한양) 으로 수도 기능을 옮기고 1938년 우한 전투에서 다시 대규모 저항을 시도하지만, 결국 패배해 수도를 더 서쪽 충칭(중경) 으로 옮겨.


일본군은 1938년경 해안의 주요 항구를 대부분 점령하지만, 중국 내륙 깊숙이까지는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일본은 점령지 통치를 위해 1940년 왕징웨이(汪精衛)를 앞세운 친일 난징국민정부를 세워 “친일 중국 정부”를 자처하게 하지만, 실제 권한은 일본군·총독부에 있었고 중국 민중의 지지도 거의 얻지 못해.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기습 후 미국·영국 등 연합국과 전면전에 돌입하면서, 중일전쟁은 태평양전쟁(아시아·태평양 전역)의 일부가 됨.


전후에는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 등에 따라 일본이 청일·러일전쟁 이후 얻은 중국 내 영토·권익을 상실, 대만·만주 등은 중국 쪽으로 귀속되는 방향이 정해져. 중국 측은 군·민간 포함 1,500만~2,000만+ 명 사망 추정. 일본 측 중국 전선에서 전사·사망한 일본 군인은 약 40~70만 명 선으로 추산. 군부의 폭주와 총력전 체제 속에서 국내 자유·민주주의는 크게 위축되고, 전쟁 말기에는 국민 생활도 극도로 피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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