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전쟁

by 구포국수

태평양전쟁


태평양 전쟁(太平洋戦争)은 1941년 12월 8일(일본 시각)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1945년 8월 패전·9월 항복 조인으로 끝나는, 미·영·네덜란드·호주 등 연합국과의 전쟁. 중국과의 전쟁(제2차 중일전쟁)까지 합쳐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보기도 해. 일본 정부는 당시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大東亜戦争)’이라고 불러. 일본은 메이지 이후 청일전쟁 → 러일전쟁 → 제1차 세계대전 → 만주사변 → 중일전쟁을 거치며 이미 제국주의 팽창을 계속.


1937년 이후 중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석유·고무·철광석 같은 전쟁 물자가 대량으로 필요했고, 이를 얻기 위해 동남아(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영국령 말라야·버마, 미국령 필리핀)으로 눈을 돌려. 이 확장을 “대동아공영권” –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아시아를 일본이 이끈다는 식으로 포장. 일본의 중국 침략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출(1940~41)에 대해 미국·영국·네덜란드는 일본 자산 동결, 석유·철강 금수 조치 등 강력한 경제 제재. 일본은 이 제재로 2년 안에 석유가 고갈될 위기에 직면했고, 군부는 “굴복해서 중국에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미국·영국과라도 싸워 동남아 자원을 뺏을 것인가”의 선택을 두고 논쟁하다가 결국 전쟁 쪽으로 기울어.


1941년 12월 7일(미국 시각, 일본 시각 8일) 새벽, 일본 해군 항공대가 하와이 진주만(펄 하버)의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 전함 4척 격침·다수 대파, 항공기 180여대 파괴 → 미국 태평양 함대가 일시적으로 큰 타격. 같은 시각 일본군은 필리핀, 말레이·싱가포르, 홍콩, 괌·웨이크 등 태평양·동남아의 미·영·네덜란드령 기지들을 거의 동시에 공격. → 일본은 “6개월 안에 결정타를 날려 미국이 싸울 의욕을 잃게 만들겠다”는 계산.


1942년 6월, 일본 해군은 하와이 서쪽의 미드웨이 섬을 미끼로 미 함대를 유인해 격파하려 했지만, 미국은 암호 해독으로 일본 계획을 파악해 항공모함 4척(아카기·카가·소류·히류)을 한 번에 격침. → 이 전투 이후 일본은 정규 항모 전력의 핵심을 잃고 수세로 돌아서. 미국·호주 등 연합군은 일본이 차지한 섬을 하나씩 모두 공격하기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만 점령하고 나머지는 보급 끊긴 채 고립시키는 ‘섬 점프’ 전략을 사용. 뉴기니, 길버트·마셜 제도, 마리아나 제도(사이판·티니안·괌) 등을 순차적으로 공략하면서 점점 일본 본토 쪽으로 진격. 오키나와 전투(1945.4~6)는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하나로, 군인·민간인 합쳐 약 20만 명 전사, 그중 민간인만 9만 명 안팎으로 추정.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미국이 인류 최초의 실전 원자폭탄을 투하. 히로시마 약 14만 명, 나가사키 약 7만 명 안팎이 1945년 말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일본 지도부는 원폭 충격, 소련 참전으로 “소련 중재로 유리한 조건을 얻자” 계획이 무너진 점,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항복. 9월 2일, 도쿄만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 문서 조인 → 태평양 전쟁 공식 종결.


2729A44657B2E1CF13




이전 17화제2차 중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