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흔적
오사카 쓰루하시·이쿠노 코리아타운
오사카 쓰루하시·이쿠노 코리아타운은 “강제동원과 가난에서 시작된 재일코리안의 삶이, 지금은 K-컬처 거리로 겉모습을 바꾼 곳”. 쓰루하시: 오사카 히가시나리구·이쿠노구에 걸친 역세권. 역을 중심으로 6개 정도의 시장·상점가가 둘러싸고 있고, 한국계 식당·정육점·야키니쿠·김치 가게가 빼곡. 이쿠노 코리아타운: 이쿠노구 미유키도리 상점가 일대, 길이 약 500m 정도 되는 메인 스트리트와 골목들. 150여 개 한국계 가게가 몰려 있고, 간판에 “OSAKA KOREA TOWN” 아치, 태극 문양 등이 걸려 있어. 오사카에서 “재일코리안이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모여 산 동네”가 바로 쓰루하시–이쿠노 축이라고 보면 됨.
이쿠노 일대에는 1920년대부터 조선(특히 제주) 출신 이주민이 조금씩 들어옴. 저렴한 집세와 공장·노동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 1939년 이후 전쟁이 격화되면서, 일본은 수십만 명의 조선인을 강제로 일본 본토로 동원했고, 그중 상당수가 오사카 공장·공사 현장으로 배치. 이들이 집단으로 모여 산 곳 중 하나가 바로 이쿠노구 일대였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식 식당·정육점·잡화점이 생기기 시작. 쓰루하시역 주변 코리아타운의 직접적인 기원은 2차대전 직후에 생긴 암시장(블랙마켓). 전쟁으로 도시가 폐허가 된 후, 식량·물자 부족 때문에 역 주변에 자연스레 노점·포장마차가 생겼고, 그중 상당수가 조선인 상인들. 이 시장에서는 쌀·고기·생선뿐 아니라, 조선식 김치·장류·곱창·돼지머리 같은 “일본 공적 배급에는 없는” 음식들이 거래되면서 일본인도 몰려드는 장소가 됨. 쓰루하시가 지금도 육류·야키니쿠·내장요리(호르몬)로 유명한 이유가 이 시절 재일코리안 정육점·불고기 문화의 연장선.
조국이 분단되고 한국전쟁까지 터지면서 “고향은 그리운데, 돌아가도 먹고 살 길이 없다”는 사람들이 일본에 남았고, 1947년 일본 정부가 외국인등록령을 시행해 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면서, 이들은 법적으로 “재일(在日) 코리안” 이라는 애매한 존재가 됨. 공식 배급에서 배제된 재일코리안은 “있는 재료로 어떻게든 끼니를 해결”해야 했고, 그래서 돼지껍데기, 내장, 고기 자투리 등을 활용한 오사카식 호르몬야키, “일본식이지만 한국풍” 잡채·전골 같은 재일코리안식 퓨전 음식이 많이 발전. 이게 지금 코리아타운에서 먹는 메뉴들에 그대로 남아.
이쿠노구 미유키도리(御幸通) 상점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인 상인이 점점 늘었고, 전후 혼란기·가난 속에서 “한인마을 상권”으로 자리 잡아. 1993년에는 길을 포장하고 출입구마다 전통풍 한옥식 문(게이트) 을 세우면서 “코리아타운”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
2002년 한·일 월드컵,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드라마·K-POP 붐 덕분에, “한국이 멋있다”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이쿠노·쓰루하시에 일본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 2010년대에는 도쿄 신오쿠보에 손님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사카 코리아타운은 전통시장의 묵직한 느낌 + K-컬처를 같이 가진 곳이라 여전히 “일본에서 가장 역사 깊은 코리아타운”으로 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