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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네 발을 누가 잘랐니

앉지도 못하고 날갯짓하는 새

by 북숄더

새야, 네 발을 누가 잘랐니

-정재학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2022, 문학동네)

발 없는 새는 땅이나 나무에 앉을 수 없다. 계속 날갯짓을 해야 한다. 발이 없어 먹이도 잡을 수 없다. 새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날갯짓뿐이다. 계속 날아야 한다. 하늘을 날던, 제자리에 있던, 계속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중에 떠 있어야 맹수에게 공격을 받지 않는다. 새는 연약한 존재다.


“이십 년간 회사도 집도 쉬지 못했다네. 이제 할 만큼 했어.” 삼십 년간 알고 지낸 고등학교 친구가 눈두덩으로 얘기했다. 친구의 눈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알코올, 발 없는 새』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 일만 해온 피로일까, 아니면 자신의 꿈을 접고 현실에 맞춰 살아온 끝에 더는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온 고백일까. 눈두덩은 슬퍼서 울면 퉁퉁 부어 티를 내고 힘들거나 피곤하면 움푹 들어가 티를 낸다. 뭐가 되었든 참 오래도 버텨왔구나, 싶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남편을 그만두겠다고, 회사는 다음 주에 그만두겠다고, 글을 쓰고 싶다고.

가장이 아니라 ‘남편’을 그만두겠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집도 쉬지 못했다”라는 말은 집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웃어주는 거짓말 위로 떨어지고 싶다네. 그 어디에서도 쉴 수가 없었다네.”


“힘들면 좀 쉬어”라고 아내가 웃으며 말해주길 기다렸겠지. 진심이 아니라도 그 한마디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빈말조차 하지 않는 아내, 되려 독하게 쏘아붙인 건 아닐는지.


우울증과 우울감은 다르다며... 발 없는 새가 날갯짓을 한다. 술집 전등 주위를 빙빙 돈다. 아주 오래전 우리는 그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의 눈두덩이 서로 마주치자 우리의 눈동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발 없는 새가 술잔으로 추락한다.


친구는 힘들지만 웃으며, 애써 괜찮은 척한다.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한다.

그 말을 듣던 화자 역시 ‘나도 그래 ‘라며 눈두덩을 보여주었다. 친구는 그제야 ‘너도 사는 게 힘들구나’를 깨닫고, 더는 포장하지 않는다. 결국, 날갯짓을 멈춘다. 발이 없는 새는 날갯짓을 멈추면 추락할 수밖에 없지만, 다행히 새가 추락한 곳은 바닥이 아닌 술잔이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술에 기대어 잠시라도 버틸 수 있는 친구 위로 떨어진다. 이 시는 그런 위태로운 위로, 그러나 진실한 공감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진: UnsplashEder Pozo Pé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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