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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규 Jan 15. 2017

인턴 3년 차 ①

인턴의 의미

어쩌다보니 나는 인턴 3년차가 되었다.

지나쳐온 회사만 다섯 군데가 되었고, 다행히도 한 곳, 한 곳이 나에게는 소중한 의미가 되었다. 이런 과정들은 나의 커리어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 나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할 뿐!


첫 인턴의 시작은 영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 P사의 프로젝트 Research Assistant였다. 컨설팅 펌에서 직, 간접적으로 일을 해 보는 것은 비즈니스에 대해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하는지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후에 다양한 포지션으로도 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인턴이 될 수도 있다. 국내외 많은 컨설팅 펌들은 학부생들에게 RA라는 포지션을 통해 컨설팅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 또한 이에 도전해 보았고, 운이 좋게 한 대학의 컨설팅을 진행하는 프로젝트 팀의 RA로 일하게 되었다.


15년도 2월 초, 새로 사 입은 정장에 첫 인턴이라는 큰 기대를 품고 첫 출근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굉장히 떨리고 설레었던 아침이었다. 따라서 나는 환대까지는 아니지만 반갑게 환영 받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근 직후, 나는 곧바로 엑셀부터 열게 되었다. 그것도 내 개인 노트북으로. 그 프로젝트의 액션 플랜은 다양한 대학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후 학과를 개편하기위한 적합한 전략을 제안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들어 갔을 당시는 자료 수집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하며 분석으로 들어가던 단계였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아직 남아있었고, 얼른 이 작업이 끝나야했다. 나는 곧바로 몇 달 먼저 들어온 RA분에게 온보딩을 받으며, 주어진 데이터와 내가 추가로 찾는 데이터들을 엑셀로 분석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나를 뽑았던 디렉터는 그냥 나를 그 RA분에게 소개만 시켜주고 사라졌다. 그 어떠한 회사와 업무에 대한 소개, 급여, 처우, 기간 등에 대한 얘기도 없이 그냥 일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인턴이 처음이었던 나도 어벙벙하게 그냥 일을 시작하였고, 그 날 하루동안 나는 다양한 엑셀의 기능들과 수 만개의 데이터를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 13시간동안 사담이라고 할만한 이야기는 점심, 저녁 시간 잠시 나눴을 뿐이었고, 여전히 나는 어떠한 조건도 듣지 못한채 엑셀 기계로 첫 날을 보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그날 밤, 퇴근 후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고, 디렉터에게 그만 두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그 분에게 장문의 문자로 온갖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인생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지 말라는 훈계와 함께. 그러나 나는 아직도 누가 무책임했던건지 잘 모르겠다.

단 하루였지만, 나는 몇 가지 배운 점들이 있었다. 컨설턴트들의 현란한 엑셀 스킬과 사람의 중요성.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턴이라도 사람이기에 왜 이 일을 시작해야하며, 이 포지션을 통한 내 인간적 처우를 먼저 알려주어야한다.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이후 나는 회사에서 혹은 팀에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치만 여전히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의 경험은 매우 값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약간 운이 나빴을 뿐.



패기있게 첫 인턴을 박차고, 다시 인턴 구직 활동에 들어갔다. 다행히 곧바로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고 운이 좋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공기업, K의 스타트업 지원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막연한 관심은 있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몰랐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스웨덴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글로벌 파트너링에 대한 관심도 있을 때였다. 이 곳에서의 주요 업무는 유망한 국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의 해외 진출 혹은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첫 프로젝트로 Microsoft Korea와 함께 국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공고 - 선발 - 네트워킹 - 기술 지원 - 비즈니스 교육 - 피칭 - 최종 선정의 액션 플랜으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대표님들, 국내 VC 및 지원기관 담당자 분들, MS 담당자 분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기회가 많았다. 비즈니스에서 커뮤니케이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갑/을의 프레임보다 함께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외에도 이 회사는 각종 크고 작은 이벤트, 전시들이 많았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크고 작은 이벤트, 전시가 코엑스, 킨텍스 등지에서 진행되었고, 이외에도 글로벌 VC의 지원/투자 프로그램도 있었다. 방식은 위에 서술한 것과 비슷하였다. 이 포지션에서 나는 다양한 국내 스타트업, VC 대표님들, 해외 투자자와 업계 사람들을 만났고,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환경을 배울 수 있었다.


인턴의 역할, 어느 것도 내 일은 아니며 나는 배우기위해 이 곳에 있다.


공기업이라는 회사의 문화를 살펴보자면, 공기업 특성상 내 식구라는 생각이 강했다. 옳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화는 선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과 정드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참 많이 정들었었다. 팀장님, 차장님을 비롯해 한 팀이 가족처럼 정겹게 일했다. 정이 들다보니 사람도 그렇고, 일도 점점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가 팀에서 차지하는 포션도 커졌지만, 나는 인턴일 뿐이었다. 6개월짜리 정해진 기간동안 일하는 인턴. 여기서 일하는 동안 인턴은 어차피 인턴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을 잘해도 어차피 내 공이 아니었고, 일에서 실수를 해도 내 책임보다는 나를 잘 지도하지 못한 사수의 책임이었다. 그렇다면 인턴은 인턴으로서 '배운다'는 자세를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해도, 못해도 학습의 과정이고 학습을 통해 앞으로 나갈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일을 해야한다. 그것이 인턴의 몫이었다. 나는 이 때의 인턴 생활을 통해 글로벌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더욱 이해하고 싶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우리 밖에 모르는 폐쇄적인 한국 기업 문화로는 글로벌 환경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나의 인식이나 경험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확장하는 것이 필요했다.(인식적 측면은 무시 못할 중요한 요소다.) 글로벌 인식은 가능한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일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미 먼저 발전된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룬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업무 환경을 만들어가는지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일은 사람이 한다. 발전된 스타트업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어떻게 일하는 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예시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구글, 페이스북 흔히 들어본 성공한 유니콘들 뿐 아니라 현재 주목받고 있는 회사들, 또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들 중에서 내가 일을 해보고 또 가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하자면, 비즈니스 영어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술잔을 기울일 정도의 영어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했지만, 비즈니스 상에서 또 다른 영어를 배우고 익히고 싶었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K에서 인턴 생활 후, 나는 떠났다. 스타트업의 성지, 샌프란시스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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