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자두

by 이의준평택

어머니는 어디선가 푸른 자두를 얻어 오셨다. 덜 익은 자두였지만, 간혹 끝이 붉은 기운을 띠는 것들은 그나마 먹을 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두를 조금 늦게 솎아낸 게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호두알만 한 자두들은 작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겼다. 설탕 한 켜, 자두 한 켜를 번갈아 쌓아 올리고는 그저 긴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자두 청을 담그실 생각이셨을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배가 몹시 고팠다.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우리 집 부엌은 단출했다. 베니어판으로 만든 선반 위에 밥그릇과 국그릇이 놓여 있었고, 쌀독 하나와 부뚜막 위 쇠솥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 쇠솥에 종종 삶은 감자를 넣어 두셨는데, 배고픈 우리는 솥뚜껑을 열고 감자를 한두 개씩 꺼내 먹곤 했다.


그날도 혹시 감자가 남아 있나 싶어 쇠솥 쪽으로 다가가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났다. 열흘쯤 전, 어머니가 설탕에 재워 두셨던 자두 항아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부뚜막 옆 항아리 뚜껑을 살짝 열어 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부엌문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항아리 속 자두에 닿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두 하나를 꺼냈다. 말랑말랑해진 자두는 푸른빛을 잃고, 어느새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향이 가득한 자두는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새콤하면서 달콤한 자두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침샘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나는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한두 개만 먹을 생각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항아리의 반쯤이 비어 있었다.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바닥을 봤을지도 모른다.


요즘 자두가 한창 나오는 계절이다. 어릴 적 먹던 그 자두가 그리워 자두를 사다 놓고 먹어 보지만, 아무리 골라 봐도 그때의 맛은 없다. 그나마 며칠 숙성시킨 자두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 시절의 맛이 스친다.


아마도 추억이란 것은,

어릴 적의 맛까지도 함께 익혀 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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