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귀신 이야기

by 이의준평택

귀신 이야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용인 어딘가에 ‘귀신의 집’이라 불리던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 귀신들의 종류와 생김새, 저마다의 사연과 행위를 적어놓은 공간이었다. 박물관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가벼웠지만, 설명은 의외로 상세했다.


귀신의 집을 지나며 들려오던 괴기한 소리, 불쑥불쑥 움직이며 사람을 놀라게 하던 장치들, 놀라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던 관객들. 지금은 용인 민속박물관에 보다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들었지만, 그 시절에는 한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귀신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어릴 적 귀신 이야기는 여름밤의 단골 메뉴였다. 지금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손전등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림자가 얼굴 위에서 일그러질수록 이야기는 더 실감이 났다.


그날도 그랬다. 닷째 형이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나는 애써 겁 없는 척을 했다. “뭐가 무섭냐”며 객기를 부리자, 형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담력시험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꽤나 솔깃한 제안을 내놓았다.


집에서 약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조그만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데, 거기 가서 말뚝 하나만 박고 오면 승리딱지 한 묶음과 라면 한 개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승리딱지는 동네 아이들 딱지를 모조리 잡아먹을 수 있는, 모두가 탐내던 물건이었고, 라면은 야식의 대명사였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천둥이 치고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비가 세차게 쏟아지자, 왜 그때 그렇게 쉽게 대답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형은 그런 내 얼굴을 보며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말투 속에는 분명 나의 오기를 건드리는 무엇이 숨어 있었다. 이미 발을 빼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냥 가기로 했다.

찢어진 우비를 주워 입고, 형이 건네준 막대기와 망치를 들었다. 빨리 다녀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비를 가르며 광주 말 공동묘지를 향해 뛰었다.


번갯불에 나무들이 일제히 흔들렸고, 멀리서 무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울가에 걸린 허연 비닐은 마치 귀신이 나와 춤을 추는 것 같았고, 질퍽이는 흙길은 신발을 붙잡아 놓으려는 귀신의 손처럼 느껴졌다.

숨을 헐떡이며 공동묘지 입구에 도착한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빗물에 미끄러진 망치는 몇 번이나 허공을 때렸지만, 이내 막대기는 땅속에 박혔다. 해냈다는 안도감에 뒤를 돌아 집으로 가려던 순간, 저 멀리 허연 사람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주춤거리는 사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었다.


내가 정말 공동묘지까지 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중간에서 포기할 줄 알고 기다리다 놀래키려 했는데, 내가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따라잡지 못하고. 말뚝을 박고 나서야 겨우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풀렸던 힘이 서서히 돌아왔다. 우리는 나란히,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약속대로 승리딱지 한 묶음을 주었고, 덤으로 라면을 끓여 주었다.


오돌오돌 떨며 먹던 라면은 유난히 따뜻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은 우리 사이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의준아, 네가 진짜 공동묘지까지 갈 줄은 몰랐어.”

형은 기가 찬 듯 말하며 라면을 한 젓가락 더 떠 주었다. 그날의 공포는 그렇게, 형제의 웃음과 함께 서서히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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