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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Jul 16.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기 몇 해 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이집트 시나이산에 올랐다. 그곳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자라지 않는 척박한 돌산이어서 광야의 강렬한 햇볕을 피할 그늘 한 뼘 없었던 터라 우리는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등산을 시작해야 했다. 불빛이라곤 길잡이가 들고 있는 전등 불빛뿐이어서 앞사람의 등짝에만 의지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앞사람을 놓칠세라 잔뜩 긴장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숨은 가빠지고, 온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다행히 정상 근처에 다다르자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쉬고 있는 허름한 오두막이 있었다. 어떤 이는 커다란 배낭을 베개 삼아 눈을 붙이고 있었고, 어떤 이는 가만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일고, 넝마 조각이 어지럽게 깔려있는 곳이었지만 바닥에 앉아 허겁지겁 육포와 초콜릿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허기가 사라지니 딱- 한숨만 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일출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말에 간신히 유혹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더는 못 걷겠다. 여기서 쉬고 있을게. 다들 올라가서 일출 보고와." 무슨 말이냐며 친구를 말렸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출은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일출을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이 일미라고 친구를 달랬다. 언제 다시 여기 오겠냐고, 평생 후회할 수 있다고 친구를 겁주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는 몇 번 심호흡을 해보고, 손발을 움직여 보더니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다.


    결국 친구를 오두막에 남겨둔 채 정상에 올랐다. 커다란 바위에 앉아 태양에 붉게 물드는 사막을 바라보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몇 분만 참았다면, 몇 미터만 올랐다면 이런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을텐데 마냥 쉽게 포기한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독에 지친 몸을 일으켜 짐을 챙기고, 졸린 눈을 부릅 떠가며 여태까지 걸어온 의미가 없지 않은가.


시내산 일출, 사막 위에 떠오르는 태양이 인상적이었다.


    8년. 5진법이나 10진법으로 날짜를 세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색한 세월을 법무관으로, 그리고 검사로 살았다. 이름 세 글자보다 그 앞에 붙는 검사라는 직함이 무거워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검사로서 내리는 온갖 결정들의 질량이 쌓여가는 경력의 제곱만큼씩 늘어나 가슴을 짓눌렀다. 눈에 띄게 야윈 몸은 가끔 파도처럼 훅- 밀려오는 공허감에 힘없이 젖어버렸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생이 덧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빈번해졌다. 쉼표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내 불안했다. 동기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쉬었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때는 어쩌지? 대출이자는 어떻게 갚을까? 하는 따위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머릿속을 메웠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포기는 죄악이고, 당장 힘들어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그 끝에는 달디 단 열매가 있다고 배워왔으니 내가 참아낼 수 있는데도 회피할 궁리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검열하고 의심했다. 쑥과 마늘만으로 백일을 버틴 곰은 사람이 되었고, 중간에 뛰쳐나간 호랑이는 역사에 가죽 한 장 남기지 못한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꾸준히 읽히지 않던가.


    대부분의 지인들이 나를 말렸다. 누구나 회의감이 들 때가 있고, 재채기 같이 우울감이 올 때도 있지만 오히려 꾸준히 일하는 편이 금세 나아지는 방법이라는 조언과, 승진에서 밀려나면 자존감이 곤두박질친다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당장 들어오는 월급이 없으면 그 자체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는 위협으로 나를 어르고, 겁주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때 그 친구처럼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시나이산 오두막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며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방금 내가 그때의 너와 같은 결정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는 껄껄껄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너희가 급히 정상에 오를 때, 나는 가만히 누워서 별을 봤어. 그리고 너희와 다른 모양이긴 하지만 사막에 떠오르는 해도 봤고. 이건 너희에게는 없는 나만의 기억이고, 그래서 더 소중해. 모두가 정상에서 일출을 볼 필요도 없고, 그래야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야. 너의 인생을 너만의 이야기로 채워, 풍성하게. 그럼 후회 안 해."




    이 글은 검사로서 보낸 10년에 가까운 시간들과, 그 시간들이 겹쳐 흘러나온 공허를 이겨내고자 그간의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보려는 시도에 대한 일련의 기록이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질 것 같아서, 세상이 산산조각 날 것 같아서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그 직함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제 빈손에 무엇이 잡힐지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알 수 없다. 이 글의 끝이 대책 없는 결정에 후회한다는 자조일 수도 있고, 별 소득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한탄일 수도 있으며 가슴속까지 단단히 채운 모습으로 허탈과 우울에 젖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일 수도 있다. 그 끝을 나도 모르니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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