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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Dec 24.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긍정꼰대(2)


수석님, 최규성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고, 최규성은 피해자의 주거지를 알지도 못하니까요.


    수석님은 사건기록을 재빨리 넘기며 무언가를 찾았다. 사건기록 어디쯤에서 그의 엄지 골무가 멈췄다.


합의서

가해자 최규성(○○시 ○○구 ○○모텔)
피해자 ○○○(○○시 ○○구)


두 사람, 이미 합의 했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이 합의서는 최규성 어머니가 대신 받아다 준…….


그래도 최규성이 직접 합의서를 제출했잖아. 적어도 최규성은 피해자의 이름까지 알고 있겠네. 그리고 최규성은 피해자네 술집이 어딘지 알잖아. 마음만 먹으면 술집에 찾아가서 얼마든지 피해자에게 해코지를 할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겠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구속영장청구서를 썼다. 경력검사들이야 후다닥 할 수 있겠지만 초임검사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일 투성이어서 쉽지 않았다. 이 검사실 저 검사실 발품을 팔며 질문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며칠 뒤 최규성은 수석님의 예상대로 구속되었다.




뚝검님의 대화
오늘 우리방에서 치콜 가능?

동기검사1님의 대화
콜, 나는 치즈가루 듬뿍!

동기검사2님의 대화
오케이


    파티에는 치킨이었다. 금초, 작초 검사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뚝 검사! 첫 구속 축하해! 종이컵 가득 콜라를 따라 기분도 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스르륵 문이 열렸다. 수석님이었다. 어? 수석님, 퇴근한 거 아니셨어요?


    수석님은 바삐 눈을 움직이더니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는 듯 엉거주춤했던 자세를 고쳐잡았다. 두고온 물건이 있어서 잠깐 들렀지. 수석님은 책상 서랍에서 물건을 챙기더니 서둘러 검사실을 나섰다. 맛있게들 먹어. 수석님이 나가자 다들 작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서로 눈을 맞추곤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음, 너희가 꼰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해줘야겠다. 구속은 속된 말로 내 손에 다른 사람의 피를 묻히는 일이야. 우리에게는 여러 사건 중 하나이고, 일상일 수도 있지만 구속된 사람한테는 일생일대 사건이고, 치명적인 사건이야. 다른 사람의 불행 앞에서 왁자지껄 축하는 하지 말자. 오늘은 집에 일찍들 들어가서 쉬는 편이 좋겠다. 뚝 검사는 고생 많았고!


    찬물을 끼얹은듯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바늘이 닿기만 하면 쨍그랑 깨질 것만 같았다. 손에 들고 있는 닭다리가 민망해졌다. 동기검사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관사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새벽까지 야근하면서 고생을 했고, 결과물이 나왔으니 충분히 자축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최규성이 자초한 불행인데 내가 그것까지 신경써야 하나? 애초에 사람을 때리지 말던지!


에휴, 꼰대.


    밤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분풀이를 했다.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 조사를 위해 최규성을 소환했다. 한창 문답을 주고받고 있는데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복도를 내다보니 허름한 점퍼를 걸친 노파가 종이 한 장을 손에 든 채 방호직원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거 탄원서라예, 술집 사장이 우리 규성이 풀어달라고  줬어예!  검사님한테 이거만 전해주이소!


    제가 뚝검인데 누구십니까? 노파는 고개를 돌리더니 나에게 달려왔다. 검사님, 여기 탄원서 가지고 왔으예, 내 아들놈 좀 풀어주시라예, 제발. 노파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깜짝 놀라 노파를 일으켜 세우고는 찬물을 건네주며 진정시켜 보았지만 노파는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바깥 상황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최규성도 눈물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정의를 실현했다는 긍지나 무사히 첫 직구속을 해냈다는 성취감 따위는 이내 휘발해 버리고, 깊은 먹먹함만이 남았다. 구속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한 인간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것도 나로 인하여 무너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제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축하하지 말라는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 말은 상대방에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 앞에 던진 축하 뒤에 밀려 올 자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Latte is horse



    세상에 똑같은 사건은 없다. 같은 죄명의 사건이어도 사람이, 시간이, 공간이 다르다.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검사 사회에서 경험의 전달이 중요하다. 모든 검사가 법을 공부했지만 경험의 차이가 실력의 차이로 나타난다. 계량화 된 레시피대로 빵을 만들더라도 갓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한 파티셰와 수십년 간 빵을 만든 파티셰의 빵이 서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서화 되지 않은 경험들은 말에서 말로 전달된다. 흔히들 검사들의 교육 방식을 도제 교육이라고 표현한다. 도제란 직업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을 배우기 위해 스승 밑에서 일하는 직공을 말하는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경험을 쌓아가는 초임검사와, 구두장인의 어깨 너머로 구두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익히는 견습생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분명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는 상대를 꼰대로 치부하며 귀를 닫았다. 분명 귀담아 들으면 유익한 말들이었을텐데도 잔소리쯤으로 여겼다. 요즘 후배검사들에게 하나 둘씩 경험을 말해주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날 수석님이 얼마나 커다란 결심을 하고 말씀을 꺼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구속을 하든지 말든지, 축하파티를 하며 북을 치든지 장구를 치든지 수석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수석님이득을 볼 일도, 해를 입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수석님은 나를 위하는 진심으로 용기를 내었다.


    경험을 나눈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후배에게 연장자로서 무슨 말을 꺼내려고만 하면 라떼는 말이야로 통용되는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인 요즘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경험의 전달이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자기자랑이 아니고, 타인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치사한 화법이 아니라면 귀를 열어도 되지 않을까. 상대방이 나를 위하는 진심 위에다 경험을 담아보낸다면 그것은 '조언'일테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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