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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Aug 05. 2021

‘생각의 여름’ 詩를 닮은 영화로 그리는 현실의 청춘

[리뷰] ‘생각의 여름’ 詩를 닮은 영화로 그리는 현실의 청춘

신예 김종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생각의 여름’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시(詩)와 영화, 서로 닮은 두 예술을 한데 모아 새로운 맛을 전한 작품으로, 청춘이 마주하는 현실과 아픔, 성숙을 그리며 남다른 감상을 안겼다.

영화 '생각의 여름' 스틸. 인디스토리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한 무기력증에 빠진 시인 지망생 현실(김예은). 그는 공모전에 내기 위해 다섯 편의 시를 써야 하지만, 마지막 한 편을 쓰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만 있다. 마지막 시가 데굴데굴 산으로 가자, 새로운 영감을 찾아 집을 나선 현실. 산으로 간 시를 따라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 현실은 생각이 가득한 계절 한 가운데 엉뚱한 하루를 보내며 과거에 호구 잡힌 자신을 구한다.

영화 ‘생각의 여름’은 시인 지망생 현실이 한여름 기행을 펼치자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영감을 얻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첫 선을 보이며 평단을 매료시킨 작품으로, 황인찬 시인의 실제 시 5편이 영화에 담겨 영화와 시를 오가는 이야기로 보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영화 '생각의 여름' 스틸. 인디스토리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5)에선 윤동주의 시가 그의 이야기와 함께 흘러나온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따라 시가 쓰여지고, 흑백 스크린 위 음율 가득한 그의 노래가 관객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전한다. 허나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동주’는 어디까지나 영화라는 매체에 머문다. 시를 차용하고, 전면에 위치시켰지만, 어디까지나 소재에 불과할 뿐, ‘동주’는 이미지로 전하는 영화 예술의 영역을 더욱 강조하기도 했다.

허나 ‘생각의 여름’은 보다 시와 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영화를 위해 시가 쓰여진 것인지, 시를 쓰다 카메라를 든 것인지 헷갈릴 만큼, 주인공의 이야기가 곧 시고, 시가 곧 이야기가 된다. 자유롭게 쓰이되 아름다운 운율을 자랑하곤 하는 시처럼, 영화는 과거와 현실로부터 탈피하고픈 주인공 현실을 따라 재기 발랄한 판타지를 펼쳐낸다. 이미지의 예술인 영화와 언어의 예술인 시. 그러나 심볼 하나로 여러 의미를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다르고도 닮은 두 영역이 한 데 모였다.

영화 '생각의 여름' 스틸. 인디스토리


형식의 틀을 자유롭게 오가는 가운데 영화는 청춘이 마주하는 현실과 아픔, 불안과 고뇌, 성장을 담는다. 과거로부터 잡혀버린 발목,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오늘, 불안과 막막함만이 가득한 내일. 아무리 허우적대도 깊이 빠져버리는 늪과 같이, 현실은 마지막 시를 써냄으로 모든 것을 떨쳐내려 하지만, 쓴 것은 결국 빈 속에 털어놓은 한 잔의 술뿐이다.

그렇게 현실의 답답함이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닿을 때, 그제서야 청춘은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끝내 노트북 화면 한 가득 써내려 가는 마지막 시의 제목은 ‘소실’이고, 그렇게 비우고 버림으로써 현실은 마침내 새로운 희망과 용기, 활력을 얻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신선하고 반가운 감상을 남기는 작품이지만, 온전히 ‘영화’로만 바라본다면 ‘생각의 여름’은 관객에게 당혹감을 안기기도 한다. 자유로운 형식만큼 어지럽고, 재치 있는 만큼 혼란스러운 작품이다. 형식을 오가는 경계선이 색다름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온전히 와 닿는지를 묻는다면 물음표가 생긴다.


개봉: 8월 12일/관람등급: 12세 관람가/감독: 김종재/출연: 김예은, 곽민규, 오규철, 한해인, 신기환/제작: 너드 조크 필름/배급: 인디스토리/러닝타임: 82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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