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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Oct 14. 2021

‘드라이브 마이 카’ 내면을 파고드는 기묘한 흡입력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내면을 파고드는 기묘한 흡입력

영화의 느릿한 호흡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화려한 영상미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반전이 없을 때 지루하다 평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그와 같은 요소가 없더라도 기묘한 마력에 의해 한 순간에 몰입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가 바로 그렇다. 영화는 17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누군가의 내면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흡입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아내는 섹스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드라마 대본을 만들던 그녀는 TV 드라마 작가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남자는 어느 날 아내의 외도를 발견한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아내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는 지방 어느 연극제에 초청되고, 여러 나라의 배우를 모아 연극 ‘바냐 아저씨’를 준비한다. 그곳에서 남자는 자신의 내면 깊은 밑바닥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가진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의 이야기를 그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쓰인 동명의 단편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지난 제74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작 중 하나로 영화제를 찾은 이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는 붉은 노을이 지는 시간, 창가에 쏟아지는 햇빛을 뒤로한 채 두 인물의 실루엣만을 비추며 시작한다. 육체적 사랑을 나눈 것이 분명해 보이는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관객으로 하여금 기묘한 긴장감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 시퀀스가 넘어갈 때마다 결국 아무 일도 없음을 확인하지만, 관객은 금방이라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이 알 수 없는 흐름을 따라, 온 몸의 신경을 스크린에 집중시키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기묘한 분위기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작품이다.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스타일인 만큼, 얼핏 낯설고 지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과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송곳 같은 대사는 강한 흡입력을 발한다. 아내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는 1막과 2막이 나뉘는데, 분명 긴 호흡의 장면으로만 이뤄져 있음에도, 영화는 날카로운 대사의 힘으로 보는 이의 심상을 단숨에 장악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는 끊임 없이 인물의 내면을 파고든다. 집요하고, 우직하게,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수많은 양의 대사와 이미지가 뇌리를 훑고 지나가며 인물로 하여금, 관객으로 하여금 인생을 반추하고 직면케 한다. 특히 영화는 원작 소설이 그러하듯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추진력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로부터 보편성을 갖추다 절정에 이르러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집요한 파고듦으로 스크린을 넘어 동시대성을 확보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단편과 희곡 ‘바냐 아저씨’를 모른다면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담긴 무수한 메타포는 물론 여러 미장센이 자아내는 생각의 단층은 힘겹지만, 섬세하게 직접 발라내야 그 맛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한 번 만으로는 충분히 즐기기 어려운 작품이다. 차 속에서 희곡 대사를 읊던 주인공 가후쿠처럼, 몇 번이고 곱씹고 싶은 영화다.


개봉: 12월/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키리시마 레이카, 박유림, 진대연, 소냐 유안, 안휘태/수입:영화사 조아, ㈜트리플픽쳐스/배급: ㈜트리플픽쳐스/러닝타임: 179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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