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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Oct 29. 2021

‘퍼스트 카우’ 진정한 카우보이들의 우정이 전하는 감동

[리뷰] ‘퍼스트 카우’ 진정한 두 카우보이의 우정이 전하는 감동

한잔의 따뜻한 우유를 마신 듯 달콤함과 고소함, 포근함이 모두 담긴 영화 한 편이 개봉 소식을 알렸다. 봉준호 감독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시적인 영화”라며 찬사를 전했던 영화 ‘퍼스트 카우’가 그것. 영화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노미네이트를 비롯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영화 '퍼스트 카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미국,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던 요리사 쿠키(존 마가로)는 표적이 돼 쫓기고 있던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를 구해준다. 킹 루에게 하룻밤 잘 곳과 입을 옷을 챙겨준 뒤 헤어졌던 두 사람은 몇 년 뒤 우연히 다시 만나고 의기투합 하지만 빈곤한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쿠키와 루는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의 빵은 금세 마을에 소문이 난다.

영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19세기 기회의 땅 미국에서 유대인 쿠키와 중국인 킹 루가 만나 마을 젖소의 우유를 훔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으로, 지난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노미네이트를 비롯, 제86회 뉴욕 비평가폅회상 작품상과 제92회 전미 비평가위원회상 탑 10영화상을 수상했다.

영화 '퍼스트 카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19세기 서부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면 흔히들 마초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사나운 눈매와 거친 수염, 걸걸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남성 무리가 총구를 들어올리며 혈투를 벌이는 모습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미장센일 터다.

허나 ‘퍼스트 카우’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함에도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수놓는다. 여성 영화로 이름을 알렸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남성 중심의 시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서부극보다 철저히 마초 사회를 해체하려 시도했다.

주인공들의 인종에서부터 감독의 대담한 결정이 묻어난다. 백인이었으나 언제나 사회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유대인,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기, 백인 사회에서 생존하는 것 조차 위대한 도전이었던 중국인. 남성이지만 우락부락한 근육도, 비장의 무기인 총도 없는 두 주인공은 서로를 만나 의지하고, 연대하며, 꿈을 키워간다.

영화 '퍼스트 카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물리적 폭력의 정도가 곧 정의이자, 힘의 척도였던 사회에서 두 사람은 명백히 약자에 위치해있지만, 그들의 풍성한 감정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만이 생기 있는 인물로 받아들이게 한다. 영화는 그렇게 마초들과 두 주인공을 철저한 대립항에 위치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전통적인 남성상을 뒤흔든다.

이는 창과 문에 대한 ‘퍼스트 카우’만의 독특한 활용법에서도 알 수 있다. 기존 서부극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 안전한 장소와 무법자들의 세계를 구분 짓든 도구로 창과 문을 활용했다면, ‘퍼스트 카우’에서는 끊이지 않는 우정과 연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렇게 영화는 기존 서부극의 공식을 뒤엎고 그만의 매력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잔잔한 어투와 부드러운 일상 속에서 두 인물 사이 견고해가는 우정이 날카로운 현실에 가시밭이 되어가고 있는 관객의 마음마저 어루만진다. 그로부터 ‘퍼스트 카우’에는 한 편의 서정시와 같은 우아함이 깃든다.

영화 '퍼스트 카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물론 ‘퍼스트 카우’는 여느 예술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같이 한없이 잔잔하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연기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도, 드라마틱한 액션도 없다. 프레임은 작고, 카메라는 고정돼 있으니 어느 것 하나 동적인 일이 없다. 허니 영화로부터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래 바라보아야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듯, ‘퍼스트 카우’ 역시 그렇다. 입가를 비집고 나오려는 하품을 잠시만 참아본다면, 어느새 쿠키와 킹 루의 우정에 깊이 빠져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개봉: 11월 4/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감독: 켈리 라이카트/출연: 존 마가로, 오리온 리/수입∙배급: 영화사 진진/러닝타임: 122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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