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어디로도 향하지 않으며

영화 <노매드랜드>, 책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by 예원

영화 <노매드랜드>는 '2011년 2월 31일, 석고보드 수요의 감소로 "US석고"는 네바다 엠파이어 공장을 88년 만에 폐쇄했고 7월엔 엠파이어 지역 우편번호 89405가 폐지됐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고 그 공장이 있던 지역 마저 황폐해지자 주인공 펀은 작은 밴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노매드가 된다.


영화를 보고 며칠 뒤에 책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읽었다. 책 표지에 적힌 소개 그대로 정지돈 작가가'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 담겼다. 작가의 여러 생각들이 다양하게 적혀있는 사이에 한강 다리 위, 아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있다.


'다리는 머물거나 멈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리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동중이다. 다리 아래 사는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이며 다리 위에 머무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이다. 이동을 위해 존재하는 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다. 버스 터미널, 공항, 기차역, 다리. 도시가 정비되면서 이들은 다른 쉼터로 쫓겨나거나 옮겨졌다. 도시는 이 사람들을 배제하고 숨기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단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선택과 의무를 포기한 것뿐이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89p


사실 책에서 말하는 한강 다리 아래 사람들과, 영화속 노매드는 상황이 다르다. 영화에 등장하는 홈리스(homeless)와 하우스리스(houseless)의 차이일 것이다. 펀은 자신이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라고 말한다. 작은 밴이 펀에게는 홈이 된다. 어떤 의미가 됐든 '집'이 없는, 머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이야기인 점에서 <노매드랜드>를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콘크리트, 목조 등으로 구성된 건물 형태의 '집'에 산다. 그리고 각각의 집에는 사회에서 규정하는 우편번호가 부여된다. <노매드랜드>의 오프닝 속 '지역 우편번호의 폐지'는 더이상 그곳을 주거 공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머물러야 하는 집은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어쩌다가 이렇게 규정되었는지, 머물고 싶지 않은 마음은 뭘지 생각해본다.


사실 나에게 집이 주는 안정감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종종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펀을 보면서 '저렇게 한번 살아볼까'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 않을 테지만.. 책에서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포기하거나 멈추는 것, 길을 잃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목적과 선택, 계획과 미래가 과잉된 현대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작용'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유를 모든 사람에게 확장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는 어느정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어떤 마음에서였건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집'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머물고 싶지만 머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머무는 사람도 있다. 한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은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어떨지 영화와 책을 통해 짐작해보는 것 정도.




집에 대한 주제와는 상관 없이 영화 속 스완키의 장면이 너무 좋았다.

그녀는 펀에게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광경에 대해 묘사한다. 수많은 제비들이 나는 모습이 물에 비쳐서 마치 본인도 함께 나는듯한 기분을 느꼈고, 새끼들이 부화하며 물 위로 떨어진 껍질들이 너무 근사했던 그 순간에 '이만하면 완벽한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스완키는 알래스카를 찾아 광경을 다시 목격한다.

'이만하면 완벽한 삶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가 한 번 있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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