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한가?”가 습관이 되는 방식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생긴 뒤에,
그 감정을 느낀 이유보다 그 감정을 느낀 자기 자신부터 의심한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를 먼저 묻고,
화가 나도
“이 정도로 기분 나쁠 일인가?”를 먼저 점검하고,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도
“별일 아닌데 괜히 유난 떠는 건 아닐까”를 한 번 더 생각한다.
겉으로 보면 이들은 차분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낀 뒤 곧바로 스스로를 검열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심리치료 이론, 특히 DBT 전통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감정 자체 때문에만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방식으로 무효화되는가가 감정조절과 자기이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 왔다.
감정을 못 믿는다는 말은,
자기 마음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느끼긴 느낀다.
서운하면 서운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나고, 불안하면 불안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감정이 올라온 직후,
그 감정을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보다
곧바로 평가와 수정의 대상으로 다뤄버리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서운하지?”
“내가 너무 과민한 건가?”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이상한가?”
“이건 그냥 넘겨야 하는 일 아닌가?”
이런 질문들이 너무 빠르게 붙는다.
DBT에서 말하는 타당화(validation) 는 감정을 무조건 옳다고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생긴 맥락과 이유를 이해 가능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반응에 가깝다. 반대로 무효화(invalidation) 는 감정을 축소하거나, 과장이라고 판단하거나, 느낀 것 자체를 문제처럼 다루는 반응이다. 중요한 건 무효화가 꼭 노골적인 비난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왜 그래”,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생각이 너무 많다” 같은 말도 충분히 무효화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충분히 느껴지기도 전에
그 감정을 반박하는 데 먼저 익숙해진다.
결국 남는 것은 감정 그 자체보다
“나는 왜 이러지?”라는 자기 의심이다.
이런 사람들은 무언가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곧바로 상대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쪽으로 먼저 시선을 돌린다.
상대의 말이 무례하게 느껴졌어도
“원래 저 정도는 다 넘기는 건가?”를 생각하고,
관계에서 서운한 지점이 생겨도
“내 기대가 너무 큰 건 아닐까?”를 먼저 묻고,
어떤 선택 앞에서 불안해져도
“내가 괜히 겁먹는 건가?” 하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얼핏 보면 이건 이성적이고 성숙한 태도처럼 보인다.
감정을 바로 쏟아내지 않고, 자신의 반응을 한 번 돌아보는 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을 점검하는 일 자체는 중요하다.
문제는 그 점검이 이해를 위한 점검이 아니라, 축소와 억제를 위한 점검이 될 때다.
최근 연구들은 이 차이가 실제 정서 경험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정서를 유발한 뒤 타당화적 반응과 비타당화적 반응을 비교한 실험에서는 두 반응이 정서 경험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쳤고, 일상에서 감정이 무효화되었다고 느낀 날에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더 부정적으로 경험할 가능성도 보고되었다. 즉, 감정을 무시당하는 경험은 단순히 기분 나쁜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다루는 방식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사건일 수 있다.
감정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비슷한 문장이 자주 떠오른다.
“내가 오버한 건가?”
“원래 다 이 정도는 참지 않나?”
“이걸 굳이 말하면 내가 피곤한 사람이 되나?”
“그 사람은 그런 뜻이 아니었을 텐데.”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감정의 원인을 탐색하기보다,
감정을 느낀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한다는 것.
이 패턴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사람은 반복적으로 어떤 반응을 경험하면, 그 반응을 점점 자기 안으로 들여온다.
감정을 표현했을 때 자주 돌아오는 말이
“유난이다”, “예민하다”, “그 정도는 다 겪는다”, “네 해석이 과하다”였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이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내가 먼저 그 말을 대신 하게 된다.
가족과 청소년을 다룬 연구들에서도, 부모의 타당화와 무효화는 정서적 어려움이나 자기손상 위험과 관련이 있었고, 반복적인 정서적 무시와 억압 경험은 이후 정서조절의 어려움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되어 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감정을 안전하게 느끼고 다뤄보는 경험의 부족이 이후 자기 인식과 정서조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흐름은 일관되게 제시된다.
자기이해는 흔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앞단에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너무 빨리 지워버리지 않는 능력이다.
감정을 계속 검열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읽는 대신 수정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진짜로 싫은 게 뭔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어떤 관계에서 자꾸 작아지는지조차 선명하게 알기 어려워진다.
서운함을 오래 참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고,
불편함을 지나치게 누르다가 뒤늦게 분노가 올라오고,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하다가도 “이게 맞나?”라는 감각을 늦게 알아차린다.
최근 리뷰들은 정서조절의 어려움을 특정 진단 하나에만 묶이지 않는 횡단적 문제로 본다. 감정을 얼마나 세게 느끼느냐만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고 의미를 붙이고 조절하는 과정 자체가 흔들릴 때 삶의 여러 영역에서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감정을 계속 의심하는 습관이 자기이해 전반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을 자꾸 의심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예민한 사람인가 보다.
별일 아닌데 혼자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보다.
다들 그냥 사는데 나만 유난인 건가 보다.
하지만 때로 문제는 예민함 자체가 아니라,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뤄본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데 있을 수 있다.
감정을 느끼면 먼저 설명해야 했고,
서운하면 참는 쪽이 더 낫다고 배웠고,
힘들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다들 버틴다”는 반응을 자주 들었고,
내 마음의 크기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더 안전했던 경험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
사람은 감정보다 기준을 먼저 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이 감정이 허용 가능한지부터 살피게 된다.
이건 아주 사적인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관계 속에서 길러진 습관일 가능성이 크다. 감정은 원래 사회적 맥락에서 조절되며, 누군가 내 감정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 줄 때 정리는 쉬워지고, 계속 축소되거나 판단받을 때는 더 방어적이 되거나 자기감정을 억누르게 된다. 커플 연구에서도 파트너의 타당화 반응은 더 나은 정서적 결과와 연결되고, 짧은 타당화 훈련만으로도 부정 정서가 줄어드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어쩌면 자기이해는
내 감정을 통제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감정을 느낀 순간 곧바로 판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운했다면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보다
“무엇이 나를 서운하게 했지?”를 묻는 것.
화가 났다면
“이 정도로 화낼 일인가?”보다
“내 안에서 무엇이 침범당했다고 느껴졌지?”를 살펴보는 것.
불안하다면
“왜 이렇게 겁이 많지?”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위험하게 느끼는 걸까?”를 생각해보는 것.
이 질문들은 감정을 무조건 옳다고 만드는 질문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곧바로 무효화하지 않고,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려는 질문이다.
DBT 문헌에서 타당화는 변화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가 가능해지기 위한 전제에 가깝다. 이해받았다고 느껴야 사람은 덜 방어적이 되고, 자기 경험을 조금 더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다시 믿는다는 것은 감정에 휘둘린다는 뜻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맞다고 우기는 일도 아니다. 그건 단지, 내 마음이 보내오는 신호를 너무 빨리 잡음으로 처리하지 않는 일에 가깝다.
내 감정을 내가 못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통제가 아니라,
어쩌면 조금 덜 성급한 자기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자기 감정보다 남의 기준을 먼저 믿게 될까.
다음 글에서는 “그 정도로 왜 그래?”라는 말이 오래 남는 이유,
즉 감정의 무효화가 어떻게 자기 불신으로 이어지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