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자연으로 버릴 수 있는 집

집을 버리는 방법에 대하여

by 폴라모모

설계사무소를 개소한 지 3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주로 소규모 건축물 설계를 해오다 보니 업무의 범위를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건축물 해체감리 교육을 받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정받은 첫 현장은 연면적 약 36,000㎡ 규모의 6층 웨딩홀이었다. 철거가 시작되고 굴삭기가 벽체를 뜯어내자 35년을 버텨온 건물은 너무도 손쉽게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와 철근, 단열재와 창틀, 유리와 전선이 한데 뒤섞여 거대한 쓰레기 산을 이루는 광경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무너지는 건축’을 마주했다. 늘 지어지는 과정만 보아오던 내게 그 장면은 큰 충격이었고, 건축이란 무엇인가, 내가 해오던 설계는 과연 옳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할아버지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석면지붕 해체 이후 남은 우사를 스스로 허물었는데, 뒤늦게 건축물 해체 신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해 마주한 풍경은 웨딩홀 철거와는 정반대였다. 나무기둥은 톱으로 잘려 땔감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흙벽은 밭에 고루 뿌려져 있었다. 쓰레기로 남은 것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재료는 다른 쓰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웨딩홀 철거 현장에서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가 비로소 분명해졌다. 우사는 쓰임을 다한 뒤에도 자연과 생활 속에서 새로운 쓰임으로 환원되는 반면, 웨딩홀은 마치 일회용 쓰레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좌측부터 순서대로)웨딩홀 철거현장, 우사 철거현장, 땔감이 된 기둥

이 경험은 ‘잘 버려야 할 대상’이 생활 쓰레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건축폐기물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언젠가 우리 집이 무너지더라도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쓰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집에 사용되는 모든 건축자재를 하나하나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단순했다. 첫째, 자연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둘째, 그렇지 않다면 해체 이후에도 다른 쓰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집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조는 비교적 선택지가 명확했다. 그동안 주로 목구조 설계를 해왔고, 목재는 조건에 따라 재사용·재활용이 가능하며, 자연에 버릴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큰 고민 없이 목구조를 선택했지만, 국내에서 구조용으로 유통되는 목재의 상당수가 수입산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렸다. 수입목은 규격화와 강도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운송 과정에서 추가적인 에너지와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함께 고려해야 했다. 이로 인해 ‘자연 소재를 쓴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사용되는지까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수입목에서 국산목재로 눈을 돌리니 과거 리모델링 작업을 했던 한옥의 서까래가 떠올랐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균일하지 않고 성능이 낮아 보일 수 있지만, 그 나무는 백 년 가까이 지붕을 지탱하며 제 역할을 해왔다. 모든 재료는 성능의 우열보다는, 그 성능에 맞는 쓰임을 부여받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국산 목재 사용 가능성을 다시 살펴보았고, 건조와 품질 관리가 비교적 잘 이루어진 업체를 찾아 구조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비록 구조등급이 낮아 부재의 크기는 커졌지만, 그만큼 집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얻었다. 성능의 우열보다 중요한 것은, 각 재료가 자기 성능에 맞는 쓰임을 얻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집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마감재는 구조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었다. 목재, 종이, 코르크 같은 식물성 재료부터 황토와 규조토 같은 흙·광물성 마감재, 아마인유와 밀랍 등 비교적 가공 단계가 적은 도료까지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었다. 다만 이들 재료는 대체로 시공 시간이 길고 숙련도가 요구되어, 결과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천연 마감재를 사용하되,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직접 시공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미 주택살이를 경험하며 집은 지속적으로 손보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직접 시공은 비용 절감과 유지·보수 기술 습득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외장에는 목재 사이딩과 수성 스테인을, 내부에는 규조토 미장, 원목 마루, 한지 장판과 한지 벽지를 적용했다. 시공 과정에서 강한 화학 냄새 없이 작업할 수 있었고, 재료의 성격이 작업 환경과 거주자의 몸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는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경험했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냄새와 분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결국 자연에 가까운 재료가 사람에게도 가장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목재 외장재 / 규조토,원목마루 / 한지장판,한지벽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재료를 우선으로 삼았지만, 모든 요소를 유기물로만 구성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때 우리가 세운 두 번째 기준은 새로운 쓰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였다. 자연에서 분해되지는 않더라도, 해체 이후 다른 재료와 섞이지 않고 분리되어 다시 사용되거나 재활용의 경로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잘 버려지는 재료’라고 생각했다. 이 기준에 따라 지붕은 컬러강판을, 창호는 알루미늄 프레임을 선택했다. 금속은 생산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여러 번 재활용될 수 있고, 해체 시에도 비교적 명확하게 분리된다. 스위치와 일부 하드웨어 역시 플라스틱 대신 금속 소재를 사용했다.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이런 작은 결정들이 모여 해체의 장면을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재료들은 흙으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쓰임을 다한 뒤 곧바로 쓰레기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이 집이 해체되는 날, 금속들이 다른 재료와 뒤엉키지 않은 채 분리되어 또 다른 구조물이나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나름의 순환이며 또 다른 형태의 재생일 것이다.

금속자재

그러나 이 집은, 처음 의도했던 것처럼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는 집은 아니다. 구조와 마감, 일부 설비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자연으로 환원되거나 새로운 쓰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지만, 단열재와 방수재 앞에서는 끝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성능 기준과 법적 요구, 자재 수급과 시공 현실은 아직 자연재료만으로 주택을 완성하기에는 높은 벽으로 남아 있었다. 특히 단열과 방수는 주거의 기본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이기에, 이상보다 법적기준과 유지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벽체에는 무기질 단열재를, 외단열과 방수에는 석유계 자재를 사용하게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재료를 집에 들여놓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만 이 재료들마저도 가능한 한 접착을 최소화하고, 해체 시 분리배출이 가능하도록 시공 방식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포기 대신 제한된 선택 안에서의 책임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이 집은 ‘완벽하게 잘 버려지는 집’을 구현한 사례라기보다, 잘 버리기 위한 기준을 끝까지 적용해 본 첫 실험에 가깝다. 무엇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무엇은 다시 쓰이며, 무엇은 아직 버려질 수밖에 없는지를 구분해 보는 과정이었다. 그 구분은 집을 짓는 내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재료는 어디서 왔는가, 이 선택은 무엇을 남기는가, 그리고 이 집이 끝나는 순간에는 어떤 장면이 펼쳐질 것인가.

건축은 언젠가 반드시 해체된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태도만으로도 설계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 집은 그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지어졌다. 비록 모든 재료가 자연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무너지는 순간까지 책임지려 했던 선택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다음 집에서, 또 그다음 선택에서, 조금 더 나은 답에 가까워지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