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의 삶의 방향을 찾아준 남편의 투자.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생기니 우리 가족은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출근에 등 떠밀려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도 되자 정서적으로 편안 해졌고, 오히려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선택지가 생기니 어린이집을 가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일을 마치고 아이를 하원시켜 돌아올 때 남편이 따뜻한 저녁식사를 준비해 놨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집을 지켜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안정감을 주었다. 남편 덕분에 좋아진 건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차려주는 건강한 식사를 하니 우리 가족 모두의 몸은 맑아지고 있었다.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남편은 점점 주부의 일상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주부의 시선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두듯, 남편도 주부가 되자 가계 관리를 위해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였다. 내 수입이 일정치 않았기에 살림살이를 안정적으로 꾸려가려면 재정 관리가 필요했다. 사실 남편은 회사에 다닐 때부터 재테크에 흥미는 있었지만, 겉핥기식으로 다루 느니 아예 손을 대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주부가 되면서 여유가 생기자 본격적으로 공부에 뛰어들었다. 이미 건강 공부를 통해 가족의 몸을 지켜주던 남편이 이제는 재테크 공부로 가정의 경제까지 살피려 하니, 경제 개념이 약한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남편은 밤낮없이 다락 서재에서 회전초밥 접시처럼 쌓인 재테크 서적에 파묻혀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는 단순히 투자법에 그치지 않고, 경제와 사회의 흐름까지 짚어가며 시대를 읽어 나갔다.
보통 재테크를 시작한다고 하면 예적금, 부동산, 주식, 채권, 펀드, 금, 은, 외화 그리고 가상화폐 투자 등을 떠올린다. 나 또한 남편이 처음 재테크를 해본다고 했을 때 이 종목 안에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남편은 돈을 불리는 것보다 필요 없는 지출부터 줄여 나갔다. 이전 맞벌이 생활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생활에 당연하다고 자리 잡은 고정지출부터 절감 대상이었다. 휴대폰요금, 인터넷/TV, 전기요금, 수도요금, 도시가스요금, 보험료 등의 고지서의 세부항목을 확인했다. 그리고 새고 있는 돈을 찾아 뺄 항목은 빼고, 줄일 항목은 줄여 나갔다. 식비, 교통비, 유류비, 의류비, 문화생활비 등의 변동지출 또한 기분에 따라 쉽게 지출하지 않고 두세 번 고민을 더했다. 그랬더니 주거비를 제외한 생활비는 약 20% 줄일수 있었다.
생활비를 줄이는 데 있어서 우리의 가장 큰 선택은 실비 보험 해지였다. 난 어릴 때부터 실비보험 없이 잘 자라왔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남편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실비보험은 요즘시대에 필수라며 나에게 가입을 권유했다. 고민 끝에 암까지 보장하는 상품 중 제일 저렴했던 5만 6천 원짜리 실비보험을 가입하였다. 평소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던 나는 보험 가입 이후로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병원비를 환급받는 과정 속에서 아팠다는 사실은 잊고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남편의 건강공부 이전까지는 내가 가입한 보험이 보장해 주는 질병에 걸려도 보험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암과 같은 중대질병이 발생되는 원인을 이해하게 되고, 건강의 주권은 환자가 챙겨야 한다는 개념이 서니 보험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대질병을 대비하는 실손 보험은 입원과 외래, 약제비 같은 병원비를 돌려주는 제도이지만 나에겐 마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같았다. 병은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인데 마치 병에 걸려도 치료비가 있으면 된다는 사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보험은 결코 평소 우리의 건강관리까진 책임지진 않았다. 그런데 남편과 고정지출을 점검하며 실비보험을 따져보니 그새 내 보험료는 10만 원을 넘기고 있었고, 남편은 이십만 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우리는 실손보험을 해지하는 대신 건강에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건강한 먹거리, 충분한 수면, 운동과 생활습관 개선 이것이 가장 확실한 의료비 절감이자 미래의 건강을 지키는 진짜 투자였다.
생활비 절약과 건강 투자 이후로 남편은 또 다른 투자를 제안했다. 그건 바로 현물 투자였다. 남편이 주부가 된 이후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를 겪으며 식탁 위의 위기를 감지했다. 평소 로컬 식자재를 주로 구입했기에 큰 타격은 면했지만 점점 수급이 불안해지고,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뉴스에서 스쳐 지나갔던 사건들이, 이제는 장바구니 속 가격표들과 식탁 위의 빈자리로 다가왔다. 식량위기와 인플레이션은 당장 우리가 코앞에 면한 문제였다. 우리는 이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돈을 쥐고 있는 것보다, 현물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현물을 직접 생산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재테크 항목으로 추가하였다.
남편과 생활비 절감, 건강투자와 맞물려 어떤 현물투자를 할까 고민하다 보니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남편은 우선 우리 가족의 먹거리 생산을 목표로 삼았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 먹는 것이야 말로 우리 집 건강도 가계도 지키는 투자였다. 게다가 내가 직접 먹거리를 생산하면 유통과정이 줄어 탄소발생을 저감 시키며, 불필요한 포장쓰레기 또한 줄일 수 있었다. 단순히 우리 가족의 건강만이 아닌 지구도 건강해지는 투자였다.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앞마당에 있는 4개의 상자텃밭만으로는 우리 가족 먹거리를 생산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확실히 지금보다는 넓은 경작면적이 필요했다. 남편과 집 주변 땅을 구입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내 도시의 높은 땅값에 현실을 깨닫고 마음을 접었다. 비용이 저렴한 시골로 가지 않는 이상 원하는 경작면적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우리가 잊었던 사실 하나가 생각났다. 지금 도시를 사는 이유는 남편의 직장위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남편이 퇴사를 했기에 우리의 가치에 맞는 곳으로 이주가 가능했다. 뭔가 등뒤에 묵혀두었던 날개가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날개가 펴지니 우리에겐 무수한 선택지가 생겼다. 그리고 큰 고민 없이 우리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시골로 이주하여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결심을 했다. 남편은 가계관리를 위해 재테크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가족이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찾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