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분리수거된 스트레스

지속가능한 지구환경 이전에 지속가능한 가정부터

by 폴라모모

첫째 출산 후, 남편은 건축사자격시험을 준비하던 나를 돕기 위해 일 년가량 육아휴직을 내주었다. 가정을 지켜준 남편 덕분에 아이는 잘 자랄 수 있었고, 난 다행히도 건축사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며 여유가 조금 생기자, 난 기다렸다는 듯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약 4년 동안의 공부와 출산으로 인해 일에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육아도 감당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가 되었지만 사무소 개소 초기에는 일이 많이 없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로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늘어만 갔다. 일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를 정신없이 돌보니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졌다. 스트레스는 해소될 여지없이 쌓이고 쌓여가며 서로에게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룰 수 없는 업무 때문에 아이에게 항생제를 먹여가며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아이의 면역력은 떨어져 갔다. 기껏 남편이 공부해서 자리 잡았던 건강식단은 요리할 여유가 점점 사라지며 잦은 외식으로 이어지며 건강한 삶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또한 가치소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며 충동적인 소비가 늘어났고, 이는 결국 과소비로 이어졌다.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북극곰의 멸종을 막자던 의지는 희미 해졌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출근을 미루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옷을 입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려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난 여태껏 살아오면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처음 내보는 큰 소리로 화라는 감정을 표현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처음보고 울음이 터졌다. 긴장 가득했던 내 얼굴은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스르르 풀어졌다. 미안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이를 진정시킨 뒤 다시 업무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야 했다.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다시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부터 아이가 잠들면, 남편과 나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분명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 텐데, 지금의 삶은 행복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결코 돈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를 마치고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 식사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부 모두 일과 육아를 병행하니 저녁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누적된 스트레스로 즐겁게 대화할 정신적 여유까지 잃었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더 이상 이런 삶을 지속하다가는 행복은커녕 우리 가족의 건강마저 위태로웠다.

마침 건강공부를 하던 남편은 식습관만큼 건강에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 관리라고 알려주었다. 일이든 육아든 무슨 일을 하든 스트레스는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몸 안에 들어온 스트레스를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갈 것은 가져가는’ 방식으로 분리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 부부가 일과 육아로 인해 처리하기 힘든 양의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분류할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원인을 따져보니 답은 단순했다. 둘 중 한 사람이 일을 내려놓고 가정을 돌본다면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일 수 있었다. 그 덕에 스트레스를 분리해 낼 여유를 되찾고, 결국 행복한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성과를 통해 인정받는 것보다, 삶의 가치를 지켜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가정을 위해 한 사람이 퇴사하는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퇴사 후보자는 남편과 나, 둘 중 하나였다. 남편은 안정적인 수입을 책임지는 대기업 연구원이었고, 난 벌이가 불안정한 자영업자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당연히 남편이 일을 계속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옳아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달랐다. 가사를 즐기는 남편은 오히려 주부로서 제격이었고, 나는 이제 막 사무실이 자리를 잡아가며 일을 재밌어했기에 스트레스가 덜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남편이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적합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처음 주부가 되겠다는 결심은 쉬웠지만 남편은 연구원이라는 명함이 사라지고 주부라는 새로운 명함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걱정되는 마음에 둘째 육아휴직 기간 동안 외벌이+전업주부 생활을 모의로 시험해 봤다. 다행히도 꼼꼼한 남편덕에 불필요한 소비들을 줄였더니 충분히 외벌이만으로 가정을 꾸려갈 수 있겠단 확신이 생겼다. 양가부모님들 또한 남편의 퇴사를 앞두고 걱정이 많으셨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남편은 집으로 이직하겠다는 의사가 결정된 뒤 회사 연구소장님과 퇴사면담을 진행했다.

연구소장 “퇴사하고 어디로 가시나요?”

남편 “집으로 갑니다."

연구소장 "네?????????"

남편 "주부가 되려고요”

연구소장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부가 된다고요?!!!!”

면담내용을 작성하려던 연구소장님께서는 너무 생소한 이직 장소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남편은 우리 가정의 고민과 판단을 잘 전달하고 퇴사절차를 진행하였다. 그렇게 남편이 주부가 된 이후로는 우리 가족의 스트레스는 잘 분리 수거되었고, 다시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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