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란 화살에 맞았을 때
해안 강민주
“댓글에 상처받았다”는 글을 또 읽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건드릴 수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댓글에
마음이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도록
나를 불끈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지킬 거지만
남자에게는 본능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들.
그럴 때면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따다닥,
마음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문장들.
내 글에 펜을 자처하는 이들과도
이 문제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고슴도치가 된다.
가시를 세운 채
한참을 서 있다 보면
정작 먼저 따끔해지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그럴 때면
오래전 적어 두었던 한 문장이
천천히 떠오른다.
내 최고의 장점은
누군가에겐 최악의 약점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부딪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던 부분을
가장 힘들어했다.
나는 말이 많다.
정말 많다.
그 말 덕분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다.
재밌다고,
시원하다고,
솔직하다고.
하지만 같은 이유로
나를 멀리하는 사람도 있다.
피곤하다고,
과하다고,
왜 그렇게 다 말하느냐고.
그래서 한때는
조금 줄여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줄이자
이번에는 이런 말이 들렸다.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그제야 알았다.
이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사랑받겠다는 목표는
처음부터 실현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의 힘이 조금 빠졌다.
그리고 그만큼
조금 편해졌다.
나는 그냥
말 많은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대신
내 말과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고마워하기로 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외로운 날에도
완전히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나를 아프게 한 댓글 덕분에
나는 멈춰 서서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말한다.
미워해 주셔서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나가는 순간에도
기고만장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내가 누군가를 공격할 마음이 없었듯,
나를 향한 댓글 또한
나를 미워해서라기보다
그의 소신이
나의 소신과
잠시 부딪혔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과 생각을 부딪혀가며
조금씩 세상을 배워가는 존재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천천히
댓글을 읽고
천천히 댓글을 단다.
혹시 그 문장 뒤에도
나처럼
서툰 진심 하나
떨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나 또한 안다.
모든 말이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문장은
생각의 충돌이 아니라
그저 상처를 내기 위해
던져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 문장은
선을 넘었다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과
모욕을 감내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이 부딪히는 세상을 믿는다.
그러나 사람을 부수는 말까지
배움이라 부르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천천히 읽고,
천천히 답하되,
넘어서는 안 될 선 앞에서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내 자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