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진열장 같은 SNS,
눈물 젖은 손수건 같은 브런치
해안 강민주
SNS는
반짝이는 보석 진열장 같다.
맛집 사진,
빛나는 얼굴,
비행기 창밖의 구름,
아이의 환한 웃음.
행복을 증명하듯
차곡차곡 진열된 장면들.
‘좋아요’는
부러움의 다른 이름이 되어
가볍게, 그러나 정확히
마음을 건드린다.
나도 그 열기에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베트남 다낭 바나힐이 떠오른다.
안개 낀 산 위,
유럽의 성처럼 꾸며 놓은 도시.
가이드는 말했다.
사람들이 더 화려하게,
더 풍요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모아 만든 공간이라고.
그리고 풍요의 상징인 포도주를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견주다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풍요는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비교는 다르다.
누가 더 가졌는지,
누가 더 빛나는지
재기 시작하는 순간
빛은 금세 열기가 된다.
나는 그 열기를 안다.
아이를 반복해서 잃었다.
의사도 이유를 몰라 고개를 저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나의 삶을 시기질투하는 이들이 있어
아이를 잃는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붙잡고
울었다.
이유 없는 상실보다
그 답이 더 견딜 만했기 때문일지도.
그날 이후
나는 나의 가장 낮은 자리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잘난 척 시선을 모아
빛나는 보석인 척하지 않기로.
대신
눈물 젖은 손수건 같은 하루를
그대로 적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아이 잃은 어미가
비극의 이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고,
슬픔을 입고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더 큰 불씨를 피하려는
겁 많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반짝이는 것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도 겨우 버틴 하루다.
굳이 불씨를 더 얹지 말자.
보여주는 삶보다
살아내는 삶을 택하자.
브런치에서 만나는 글들 중에도
비슷한 결이 있다.
보석 대신
눈물로 반짝이는 글들.
상처를 고백하는 사람들,
무너진 날을 적어 내려가는 사람들,
조용히 버틴 시간을 꺼내 놓는 사람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빛나고 싶다.
좋아요도 받고 싶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한 줄을 더 고친다.
보석은 아니어도
조금은 반짝이게.
읽히고 싶다.
그러면서도
비교에 갇히고 싶지는 않다.
아마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